작업일기

흙으로 부터...09-2

철우박 2008. 7. 31. 14:11

 

오랫동안 미루어놓았던 대작을 시작했습니다.

섬진강 작업을 중단하고

'흙으로 부터...' 연작을 줄곧 그려왔지만

대작에 대한 욕심이 항상 있어왔습니다.

하긴, 120호라고 해봤자 마음에 비하면 중작입니다.

 

그동안 땅으로부터 바라본 들꽃 그림을 주로 그려왔습니다만

스스로 자연에 지나치게 몰입하는게 마음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부터 바라본 민초의 모습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민초를 흙에서 바라본다면 이런 모습일까요?

 

밑에서 위로 쳐다본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해왔습니다.

처음엔 1cm두께의 강화유리를 구입할까 생각했었고...

다음엔 사고를 대비하여 자동차 중고 안전유리를 여러장 구입할 것도 검토하였고... 

그러다 어느 순간 미술실 작업대의 유리를 여려겹으로 겹치면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의상도 필요하겠지요.

그동안 미술실에 방을 붙여 의상 수집에 노력했지만...

 

우리학교 이쁜이들은 꿈쩍도 안했습니다.

점수에 반영한다면 금새 백벌도 넘게 수집되겠지만 그러면 나쁜 선생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읍소 작전으로 나갔습니다.

미술실 천장 선풍기에 메달아두었더니 선풍기를 틀면 이녀석이 지랄댄스를 추면서 아이들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드디어 몸빼 바지가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입던 것...

이모가 입던 것...

할머니가 입던 것...

의상을 가져온 녀석들에는 제 작품이 실린 달력과 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추가로 상의와 몸빼 몇 벌도 나주장에 가서 구입했습니다.

이제 녀석들이 의상을 차려입고 모델을 설 수 있도록 두번 째 작전을 짜야합니다.

 

... 고민 끝에 정공법을 선택했습니다.

"미술 1등급 맞은 녀석들 모두 나와!"

"너희들은 샘의 수제자이다. 맞지?"

".......예"

"지금부터 미술샘 작품의 모델이 되는 영광을 부여하겠노라..."

"자료실에 들어가서 당장 옷갈아입고 나와!"

 

... 정공법의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샘, 무서워요.... 유리 깨지면 어떡해요? "

"허,,,, 코끼리가 올라가도 안 깨진다. 염려말라..."

 

디모데 죽네... 

 

자, 호미도 들고,,,, 찰칵!

 

열심히 흙을 파라....찰칵!

 

찰칵!

 

찰칵!

 

찰칵!

 

나는 농부다... 최면을 걸라....찰칵!

 

"근디, 샘, 포즈가 좀 거시기 하네요..."

"뭐가 그래 인마... 아름답기만 하다야....ㅋㅋ"

 

밑에서 보는 얼굴도 찰칵!

 

 

사랑이...

 

"샘, 수제자 아니면 모델 못해요?" 

"사랑아, 하고잡냐?...."예"...."넌 무조건 나의 수제자다"... "어서 옷 갈아입어라."

실은 이녀석을 꼭 찍고 싶었는데... 제 발로 걸려들었습니다.^^

 

몸빼 바지를 맨 먼저 가져온 1학년 친구입니다.

 

이제 사진 자료는 어느정도 확보가 되었습니다.

민들레 사진도 이미 찍어두었습니다.

 

스케치는 거칠고 가볍게 하겠습니다.

120호는 F사이즈도 옆으로 길쭉한 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밑 작업이 끝나고 직접 화면 위에서 스케치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두 달여 전에 캔버스는 미리 짜두었습니다. 참고로 120호 F사이즈는, 가로 193.9cm  세로 130.3cm입니다.

 

아크릴칼라와 페인트붓으로 밑작업을 시작합니다.

 

대부분 하늘 배경이 되겠지만 처음에는 조금 어두운 톤으로 채색합니다.

 

초벌 작업을 마침

 

물감이 줄어서 잘 나오지 않을 때는, 물감 통을 칼로 두 토막을 내어 사용합니다.

  

두번 째 밑 작업은 거친 질감을 살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아크릴 물감은 빠른 붓질을 하여 거칠고 두터운 질감을 표현하는데 용이합니다.

7월 31일 까지의 작업이었습니다.

 

푸른색 계열 바탕위에 따뜻한 노란색 톤의 덧칠을 했습니다. 

당분간 하늘을 푸른색 톤으로만 바라보아왔던 괘도를 수정해볼까 합니다.

저의 경우 풍경화에서의 하늘색은 몇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대학 때를 비롯한 초기에는 오히려 푸른색 계열을 쓰지 않았습니다. 당대는 인상파 화풍이 주류이기도 했거니와 스카이 블루빛 하늘이 왠지 멋도 없고 촌스러웠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사실주의와 민중미술을 하게되면서 다시금 색채가 솔직해졌습니다. 거짓과 부조리가 만연한 당시의 어두웠던 사회에 대한 반대급부라고나할까요?  푸른색 하늘을 배경으로 한 저의 그림을 보고 북한미술 또는 키치아트(통속적인 미술 - 이발소 그림) 같다는 주변의 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요소는 저조차도 알게 모르게 배어있습니다. 대중성(대중이 바라는 미술)을 기필코 극복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미술이야말로 미술계 내부의 지진한 통속이 아닐까요?  제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의 저열함은 '숨김의 미학'에 있습니다. 인물화를 못그리는 화가는 어느사이 부끄러움으로 부터 벗어나 버렸습니다. 현대미술의 장르는 너무나 넓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지금은 표현을 뛰어넘어 이미지화가 되었습니다. 잘 그리는 것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선택이야말로 높은 미적 가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미술세계는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벼룩백화점이 되어있는줄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진짜 보석보다는 가짜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사기꾼들...  (넋두리 였습니다.^^)    

 

타원형의 하늘을 남기고 사방에 흙 공간을 그렸습니다.

아직까지는 이 방법을 고수하겠습니다.

 

보다 밝은 톤으로 거칠은 질감을 살리면서 하늘을 표현했습니다.

 

 표면의 질감입니다.

 

따뜻한 바탕위에 그대로 그려나가도 그만입니다만

왠지 푸르고, 조금은 촌스러운 하늘색이 저를 가만 놔두지 않는군요.

그려나가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번 째 인물은, 유일하게 서 있는 인물입니다.

캔버스의 오른쪽 하단에 자리를 정하고, 콩테로 스케치한 후 붓으로 형을 그렸습니다.

 

주인공 인물은 한 모델에 만족치 않고, 사진 몇장의 장점들을 차용해서 표현했습니다.

8월 4일까지의 작업이었습니다.

 

주인공을 그렸으니 이제 조연들을 스케치해야죠.

 

각 인물의 포즈와 위치 선정은 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건축으로 비교하자면 설계도에 따라 뼈대를 제작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물의 포즈와 배치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인물 배치를 다했습니다. 9명입니다.

않아서 일하는 여인 일곱, 서 있는 여인 하나, 맨 왼쪽 여인은 허리 한번 펴고 다시 앉으려는 자세입니다.

 

자 이제 뼈작업이 끝났으니 슬슬 살작업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을 먼저 그려야겠지요.

중요한 선택이 먼저 필요합니다. 인물의 섬세도입니다. 사실성의 밀도를 얼마나 가져가느냐 입니다.

쉬운 말로 머리카락까지 매우 섬세하게 그릴것인가? 아니면 좀 투박스럽게 단단한 느낌이 나도록 표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저의 판단으로는 두가지 표현의 장점을 모두 취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이런것입니다. ' 수건이나 옷감의 무늬가 충분히 표현될만큼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하되 너무나 작은 붓질에 의존 않고

인물의 성격을 단단한 느낌이 나도록 표현한다.' 입니다.

 

주인공의 몸은 우리학교 현진이, 얼굴은 우리학교 사랑이, 그리고 주인공의 목에 두른 수건은 제가 미술실에서 사용하던 수건, 

호미는 우리학교 창고에서 몰래 훔쳐온 것을 아는 사람은 원래 저 혼자여야합니다만, 제 작업일지를 구경한 사람들도 이제 함게 알게되었습니다.^^

 

8월 16일까지의 작업이었습니다.

 

 

 

 

 

개학하느라 바빴습니다.틈틈히 작은 시간 쪼개어 세 인물을 그렸습니다.

인물은 비교적 단단한 느낌이 나도록

몸빼바지의 무늬도 단순화시켰습니다.

세번 째 여인이 마음에 드는군요.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

 

9월 5일까지의 작업이었습니다.  

 

 

 

휴~~ 일단 한 숨.

인물 작업이 일단락되었습니다. 충실치 못한 부분은 앞으로 보완할 계획입니다.

이제 인물들을 빙 둘러 풀, 또는 풀꽃을 그려야하는데 마음이 움직입니다.

처음엔 민들레를 그릴 생각이었습니다만 풀밭에 비하면 공간처리에 한계가 있고

또 너무 의도적인 표현이 되어 리얼리티가 떨어질 것도 같고,,, 아무튼 긴 고민에 들어가야겠습니다.

 

10월 15일까지의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작업을 중단해야겠군요.  광주민미협 정기 주제전 작품을 시작해야합니다...

 

 

 

 

 

작년 10월 이후로 긴 시간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작업에 치중한 이유도 있었지만  겨울 방학동안 술이나 빚어 마시면서 정신 휴양?을 좀 했습니다.

이제 인물을 에워싸고 있는 원에 풀꽃을 그려야하는데, 코스모스, 민들레, 잡초 등을 놓고 많이 번민하였습니다.

결국 민들레로 결정을 했습니다. 코스모스는 민초들의 모습에 비해 너무 낭만적인것 같고, 잡초는 좀 삭막한 것도 같고, 그래서 민들레꽃과 하늘을 날으는 홀씨를 그려 '희망'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2009년 3월 28일까지의 작업입니다.

 

 

 

 

 

 민들레 홀씨를 날렸습니다. 저녁마다 시간을 내어 이녀석을 훨훨날렸습니다.

지금까지 작업 중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참고로 민들레 홀씨는 그림에서 처럼 통째로 날라가지 않습니다. 하나 하나 파편이 되어 날라가지요.

리얼리즘에서도 적당한 혹은 적절한 상상력은 필요합니다. ^^

 

4월 13일까지의 작업입니다.

 

 

 

2009년 7월 22일 완성입니다.

날짜로만 1년이 걸렸습니다. 세부 장면은 카테고리 '부터...'에 소개합니다.

 

 

 

'작업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으로부터... 눈물  (0) 2009.09.16
도청으로부터...  (0) 2009.04.03
꽃으로 부터...  (0) 2008.04.07
당산나무로 부터...  (0) 2008.01.28
몽골의 아침으로 부터...  (0) 2007.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