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말 라 야 안 나 푸 르 나
가슴 벅찬 이름입니다.
산을 좋아한 이후로 죽기 전에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전교조 광주-전남지부 풀꽃산악회에서
소중한 벗들과 함께 도전했습니다.
안나푸르나 제1봉의 일출(2012년 1월 7일 오전)
2012 임진년 정월 초이틀(1월 2일) 꼭두새벽 1시에 광주 출발
새벽 인천공항에서 출정 기념 촬영
24명의 전사 중 22명 촬영... 2명은 벌써 오리무중...^^
대한항공 아침 기내식 먹고 와인한잔 마시고
영화 한편 보고나니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국제공항입니다.
카트만두 입성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비구름때문에 2시간을 공항 상공에서 선회비행하다 겨우 착륙
신고식을 호되게 치렀습니다.^^
부랴부랴 포카라행 비뱅장으로...
불행 중 다행인가?
기적인가?
운좋게도 포카라행 프로펠라 비행기는
2시간이 넘도록 우리 일행을 기다려주었습니다.
하긴, 30인승 비행기에 24명이 지각했으니...
프로펠라 비행기는 난생 처음
어째 쫌 으시시~~
왠 솜과자?
ㅋㅋ 목화솜으로 귀를 막으랍니다
짠~ 귀를 막고
@@@ 이래뵈도 기내식도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프로펠러 비행기가 더 안전하다고,,,
엔진 한 쪽이 고장나면, 나머지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그리고 동체가 작으니 논밭에 착륙도 용이하다고...
믿어야죠
차창밖으로 만연설 덮힌 흰 산이 보입니다. 꺄오!!!
네팔의 두번 째 도시? 포카라 공항 도착
우리 비행기를 기다리며 짜증난 승객들... 정말 죄송합니다.
곧바로 샹그릴라호텔로 압송
헐,,, 별 네개짜리라더니
간판도 없군...
호텔 로비의 카고백들
샹그릴라호텔방
첫날 밤부터 어이없게 추위에 떨었습니다.
아침이 되어서야 후회막심,,, 차라리 침낭을 펼치고 잘걸...
진짜 어이없는것은,,, 난방 스위치가 있었다는 사실...@
추위에 쪼그라든 몸을 아침에 겨우 일으켜 세우니
어쭈라?
시설은 난장판인데, 조경은 제법일세...
짠~ 괜찮군...
짜잔~ 제법이군...
수영장까지... 한 풍경 하네요
샹그릴라 호텔은 시설은 비록 노후되었지만
잘 가꿔지고 오래된 이국적 정원과 맑은 공기가 참 기억에 남습니다.
레스토랑도 괜찮네요
포카라 시내의 고목과 시가지
루피로 환전을 했습니다.
1달러는 82루피.
네팔지폐에는 인간의 얼굴이 없습니다.
코끼리, 호랑이, 곰 등 동물잔치입니다.
드디어 트래킹 출발 지점인 페디에 도착
트래킹 지도입니다.
맨 오른쪽 아래 포카라에서 버스로 페디까지 이동
페디(1097m)에서 트래킹 시작(맨 오른쪽 점선 방향으로) - 담푸스 - 란드룽 - 촘롱 - 도반 -
히말라야호텔 -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일간 오르고 3일간 내려오는 일정입니다.
페디의 마을 풍경
이곳이 출발 지점입니다.
장기 산행시 준비운동은 필수.
7일간 산행을 이끌어줄 현지 가이드들입니다.
맨 가운데 인물이 총가이드 '빠담'
그 오른쪽이 선두 가이드 '조르지'
빠담의 왼쪽이 그의 동생 '빔'
맨 오른쪽이 가이드 첫경험인 '아무개'
포터들이 카고백을 묶고 있습니다.
헐,,, 한 사람이 카고백 두개를 묶고 자신의 짐까지 더해 묶고 있습니다.
과연 저걸 어떻게 지고 나를지...???
드디어 '빠담'의 지시로 대망의 히말라야 트래킹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조금 오르자 금새 마을집이 나타납니다.
천천히 10분 정도 오른 뒤 휴식,,, 처음부터 무리는 금물
겨자색 여인은 최연소 여성 김**양, 분홍색 배낭은 최연소 남성 김**군입니다.
두 사람 모두 등산 경험이 없는데도 끝까지 완주하는 아름다운 인내심을 발휘하였습니다. ^^
우리 일행을 뒤따르는 한 청년
저의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눠보니 프랑스인이었습니다.
알바해서 번 돈으로 푼힐까지 간다고 말했습니다.
"반바지 안추워?"
" 너무 더워 죽겠어요."
30여분 오르니 금새 실개천이 드러납니다.
히말라야를 오르다보면 이렇게 생긴 견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잘 따르고 매우 온순합니다.
견종을 물어보고 여기저기 검색해보았지만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곳의 주식은 쌀입니다.
천수답이긴 하지만 여름철 우기에는 강수량이 풍부해 걱정이 없답니다.
안량미는 가볍고 맛은 떨어지지만 소화는 매우 잘된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촬영을 했습니다.
가운데 남자가 자신은 한국사람을 좋아한다고 유창한 영어로 말했습니다.
리얼리??? 한국사람 어데가서 존소리 별로 못듣는데...
등산 초입부터 저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습니다.
트래킹이라고 해서 완만하고 넓은 도로를 주로 걸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7일동안 좁고 울창하고 경사도가 심한 길을 주로 걸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알고 가지요.
현지가이드 '빠담'의 말에 의하면 '트래킹'의 개념은 해발 3000미터 이하의 산을 등반하는 것을 말하며
3000미터 이상의 산을 등반할 때 비로서 '클라이밍'이란 개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고로 우리나라는 해발 2000미터를 넘는 산이 하나도 없으니,,, 평생 트래킹만 할 수 밖에....ㅋ~~
맨 처음 롯지로 기억됩니다.
소녀의 웃음이 공기만큼 맑습니다.
'롯지'는 숙소를 말하는 것으로 음식물, 음료, 식사 등을 파는 곳입니다. 물론 화장실도 있고요.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면서 여성분들은 화장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수많은 롯지들이 휴식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가마니 짜는 아낙들.
히말라야를 오른지 얼마 안되어 우리는
기가 탁 막히는 만남을 갖게됩니다.
저와 포즈를 취한 이 여대생은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는 영문과 학생인데
글쎄 단신으로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그것도 무셀파로...
이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이랍니다.
일행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왕며느리감으로 추천했습니다.
이 친구 말고도 등반 6일 째 또 한 여성을 만났는데
단신 남아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역시 대한민국 여성은 참 거시기합니다.
헉!
드디어
나중에 출발한 포터들이 우리 일행을 따라잡았습니다.
키는 내 목도 안차는 단신인데 카고백 두 개를 여유있게 지고 올라왔습니다.
그것도 쓰리빠를 끌고...
내가 한번 이마로 들어올리려는데
가이드가 황급히 말립니다.
"쌤! 목 부러집니다."
이 양반 존함은 ' 멀레' 나이는 40대 초반?
포터들 중 1등으로 올라왔습니다.
줄곧 저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히말라야의 천진난만한 아이들...
트래킹 기간 내내 이 아이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애절한 눈빛에 못이겨 이사람 저사람 쵸코렛류의 과자를 주고마는데
제 생각에 이 아이들이 하루 먹는 쵸코렛양은 200그램을 넘을 듯 합니다.
치과 진료 커녕은 치솔질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에겐
극약과도 같은 것,,, 제발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쵸코렛 대신 학용품을 넉넉하게 사오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학용품은
연필, 연필깎이, 지우개, 예쁜 노트, 크레파스, 색연필, 작은 스케치북 등입니다.
다음 기회에는 꼭 사가겠습니다.
히말라야 트래킹 중 산중에는 꽤 많은 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정도는 큰 학교이고 마을 마다 작은 학교가 꼭 있습니다.
정보 부족으로 아무런 대비 없이 온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멀레'와 기념촬영
제가 멀레에게 가끔씩 간식을 선물했는데
그가 먹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백에 챙겨 넣더군요.
아마도 그에게도 예쁜 자식들이 있겠지요.
한 아이가 노트를 펴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등산로는 그림처럼 철평석으로 잘 정돈된 곳이 많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풀꽃산행 맴버들입니다.
지금은 모두 여유있게 웃고 있지만
마지막 단체 사진을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
곳곳에 그림처럼 평석을 쌓아 쉼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포타나에 도착,,, 점심시간입니다.^^
식탁을 펴고
따뜻한 과일쥬스 한잔
스텐레스컵에 담긴 쥬스 또는 보리차는 수시로 제공됩니다.
모닝콜시, 식전, 식후.
주방장님이 처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트래킹 7일간 21끼의 한식을 저희들에게 베푸실 분입니다.
특별히 한국음식을 배운분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우리에게 끝까지 감동을 선사한 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밑반찬, 한국과 전혀 다를바가 없네요.
우와와! 첫 식사는 비빔밥.
현지에서 만든 김치인데 맛있습니다.
현지 바나나?
맞습니다.
이 곳은 남반구이기 때문에 등산로 주변에 바나나 나무가 꽤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말못할 아픈 시련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포카라 비행장에 도착하면 멀리 히말라야 만년설이 웅장하게 드러난답니다.
그리고 샹그릴라호텔에서도 만년설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또 그리고 트래킹을 하면서 만년설을 줄곧 바라보며 희밍을 가지고 걷는답니다.
근데, 우린 뭡니까?
위의 사진을 보시다시피
우울한 날씨로 인해 흑백 실루엣만 보고 걷는 중입니다.
내~~~참.
우울한 쇼핑센터.
어이없는 것은
내리막길이 많다는 것입니다.
겨우 좀 올라왔나 싶으면 한 참을 내려가 히말라야 계곡 까지 치닫습니다.
이러기가 몇 번.
이 때는 나도 모르게 소리 한가락이 나오고 맙니다.
"어이 가려나 어이가리,,, 황성 천리를 어이 갈끄나?
여보게 뱅덕이네 길소리를 맞아주소,,,다리 아파 못가겄네...."
주방팀들이 어느새 설거지를 마치고 뛰어 우리를 따라 잡았습니다.
이 양반들에게 길을 비켜줄때는 낭떠러지 말고 산비탈쪽으로 몸을 비켜줘야 합니다.
잘 못하면 대형 바구리에 튕겨 생을 마감지을수도 있으니...
포터나 주방팀들은 하루 10달러 정도의 보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들은 우리에겐 밥을 해주지만 정녕 그들은 롯지에서 밥을 사먹습니다.
한 끼에 2~300루피 정도 하니 그들에겐 큰 돈입니다.
음식값이 비싸 보통 두 끼 식사만 한답니다. 어떤 사람은 한끼만 먹는 경우도 있답니다.
두 끼를 사먹으면 그들 손에 하루 5~6달러의 돈만이 쥐어집니다.
왠지 제가 죄를 진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들의 복장은 보통 운동화에 얇은 옷이 전부인데
추위에 강한 것인지 참는 것인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가정에서 입지 않은 옷도 이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등산객들은 입던 옷과 신발을 주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포터들이 우리 일행을 추월하여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곳은 생각보다 따뜻한 곳입니다.
마지막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제외하면 날씨가 푸근하여
각종 작물을 재배하여 자급자족합니다.
배추, 당근, 상치, 양배추, 토란, 무 등.
오랜만에 보는 한글.^^
진짜로?
제가 유창한 영어로 말했지요.
"유, 그래이트 보이.""
그랬더니
좋아 죽네요.^^
이곳에 학교를 세우는 모금함입니다.
아이들 학용품을 못사온 죄값으로
달러를 좀 넣었습니다.
교과서는 없습니다.
노트 한권에 연필 한자루,,, 항상 이 모습입니다.
평석으로 지붕을 덮은 집.
길에서 마주친 한 소년이 내게 꽃을 주었습니다.
멀리 첫 밤을 보낼 란드룩 마을(1565m)이 보입니다.
길가에 자주 눈에 띄는 나무입니다.
가지가 다 잘려있는 경우가 많은데
잎과 가지를 쳐서 양의 먹이로 준답니다.
드디어 란드룩 도착.^^
이 예쁜 방 중 난 어디서 잘까?
두근 두근~~~설레임
으헉!
양철 별채로 방을 지정받았습니다.
나도 아내와 같이 올걸...^^
침대 두개. 탁자 한 개 끝. ^^
220볼트, 충전 가능.
저녁 술안주는 홍어.
크흑!
혜초여행사 정오승 사장의 특별한 생각이랍니다.
히말라야 롯지에서 홍어에 잎새주 한잔이라...
길이길이 기억에 남으리...
롯지에 자랑스럽게 붙어있는 영국 용병의 사진
아마도 이집 가장인듯.
과거 영국이 네팔을 침략하여 총을 들고, 칼을 든 네팔 전사들과 싸웠답니다.
어이없게도 영국군 궤멸.
도저히 해볼 수 없자 네팔 접수를 포기하고 대신 용맹하고 민첩한 네팔 용병을 돈 주고 사서
특수부대를 창설했답니다.
네팔 인들은 영국 용병이 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었더랍니다.
용병의 딸
히말라야의 첫날밤은 달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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