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 바카엥(Phnom Bakheng)에서 바라본 앙코르왓입니다.
프놈 바카엥은 앙코르톰 남문 아래쪽에 위치한 약 70미터의 언덕에 위치한 사원입니다.
앙코르의 환상적인 저녁노을로 유명한 곳입니다.
해질녁이 되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멋진 석양을 보기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합니다.
물론 석양은 앙코르왓이 보이는 이 쪽 방향과 다른 방향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진짜 멋진 일몰은 일년에 몇 번 밖에 볼 수 없다고 하네요.
프놈 바케엥의 일몰(퍼 온 사진입니다.)
씨엠립의 꼬마들은 카메라 렌즈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녀석이 손가락을 조금만 더 벌렸으면 원달러를 기부했을 텐데
투달러를 달라는 것으로 그만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캄보디아의 빛, 앙코르왓 입구에 섰습니다.
멀리 뽀족한 앙코르왓이 보입니다.
해자 입구에 완전히 복구된 나가신이 800년의 역사를 되돌리련듯 합니다.
해자를 건너는 관람객들.
양쪽으로 보이는 해자. 지금이 건기임에도 물이 가득 차 있는게 신기합니다.
이제 악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입구의 원형인듯 한 나가신상.
아,,,드디어, 앙코르왓이 찬연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앙코르 유적군에서 가장 웅장하면서도 신비하게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정문의 탑 윗부분들은 벼락(추정)에 의해 모두 회손되었지만
왕코르왓은 건재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합니다.
앙코르왓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에 위치한 사원으로 12세기초에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30년에 걸쳐서 크메르 제국의 도성으로 창건되었습니다.
축조된 이래 모든 종교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맡은 사원입니다.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 쓰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교 사원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크메르 제국의 불가사의 하고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 가장 잘 표현된 곳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나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봐야 할 유산으로 불리웁니다.
캄보디아 국기는
바탕색은 한 때 사회주의 우정 국가였던 북한의 패턴을 모방하였고
별 대신 앙코르왓이 그려져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해주었습니다.
사원의 정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힌두교리에 의한 것으로
왕의 사후 셰계를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중앙의 높은 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Meru), 즉 수미산이며
주위에 있는 4개의 탑은 주변의 봉우리를 상징합니다.
16세기 이후부터 사용한 앙코르와트의 뜻은 '사원의 도읍'이라는 뜻입니다.
앙코르왓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새벽무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관광객들은 새벽에 반대편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고 합니다.
위 의 사진은 잠꾸러기인 제가 위안을 받고자 퍼 온 것입니다.
같은 포토존에서 잠꾸러기가 본 것.
자,,, 앙코르왓 본 신전에 들어왔습니다.
앙코르왓은 사각형의 담과 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동서남북 벽의 총 길이는 1200m 입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거기에는 위의 그림처럼 가득히 섬세한 양각 부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동서남북을 이루는 기다란 회랑은 힌두교의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해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수년 전에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다 불상사가 자주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건 불상이고요 여기 어딘가에 시바상도 공존하고 있다던데 미쳐 못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캄보디아의 빛, 앙코르왓을 보았습니다. ^^
캄보디아 여행의 필수 코스
톤래삽호수와 수상가옥을 보기 위해 전세배를 탔습니다.
수평선이 보이는 이 호수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호수입니다.
캄보디아 면적의 15% 크기인 이 호수는 우기에 12,000제곱 km로 늘어납니다.
호수 곳곳에는 베트남 난민들이 수상가옥을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형보트를 타고 난민들의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 분들의 인권과 사생활을 존중하기에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수상가옥 주변의 맹그보르 숲을 탐방하였습니다.
씨엡립의 번화가입니다.
카페 '레드 피아노' 안젤리나졸리가 여그서 커피를 한 잔 묵었다고 명소가 되었다네요.
저도 한 잔 묵어볼까 했는데 코 큰 사람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불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캄보디아의 음영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거의 강제로 영화 '킬링필드'를 보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더군요,
흔히 캄보디아의 학살이 크메르 루주의 폴포트(아래 사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지만
150만명의 주검 중 30~40만명은 미국의 무차별 폭격에 의해 죽은 것입니다.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의 물자 수송을 캄보디아가 도왔다는 이유로
54만여톤의 폭탄을 캄보디아에 투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시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양의 3배)
훗날,,, 키신저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영화 '킬링필드'를 허위 사실로 제작해
세계에 배포했으며 우리나라도 충직한 대통령 박정희가 전 국민이 보도록 한 것입니다.
폴포트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즈의 우두머리 폴포트의 집권시기인 1975~1979까지
사회적, 제도적, 물리적 인프라를 거의 파괴 당했습니다.
폴포트는 내전의 종식자가 되어 캄보디아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캄보디아민들은 이제 전쟁 없는 세상이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폴포트 정권의 과격 집산주의, 민족주의적 고립주의는
적으로 여겨지는 모든 사람들을 처형했습니다.
교사, 의사, 변호사, 학자, 전문직 종사자, 불교 승려는 물론 글씨만 알아도
처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캄보디아에는 안경 쓴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학교에 안 가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합니다.
배우면 죽는다는 공포가 지금도 캄보디아를 지배하고 있답니다.
'킬링필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 1기 킬링필드 - 1969~1973년 - 주범 : 닉슨, 헨리 키신저
제 2기 킬링필드 - 1975~1979년 - 주범 : 폴포트
크메르 루즈 집권기만을 범죄 대상으로 다루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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