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기행 1 (우루무치-트루판)
실크로드를 다녀왔습니다. (2007.08.04~08.12)
그 중에서도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신강 위구르 자치구)를 여행했습니다.
'신장'은 중국의 서북쪽 끝에 위치한 자치구입니다.
고대 중국인들이 타림분지에 산재해 있던 오아시스 도시 국가들을 지칭하여
'서역36국'이라고 부르던 비단길의 일부분입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흉노족, 돌궐족, 몽골족 등 유목민족에게 피의 지배를 받았던 땅입니다.
현재는 인구 2500만, 49개 민족이 살고 있으며 중국 전체 면적의 6분의 1입니다.
지형은 '3산 2협' 이라고 부르는데..
맨 위쪽에 내 몽골과 접경한 알타이 산맥이 있고
그 아래 중가리아분지
그 아래 천산산맥
그 아래 타림분지(타클라마칸 사막)
그 아래 군륜산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구글어스의 위성 사진을 이용하여 여행 경로를 살펴보겠습니다.
위성 사진이 증명하듯이 신장 지역은 지구상의 가장 깊은 내륙입니다.
바다와 가장 격리된 지역이란 뜻입니다.
오른쪽 주황색 시작점이 '우루무치'입니다.
순서대로 '트루판'...'쿠처'...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여 '민펑'...'허티엔'
...그리고 맨 마지막이 중국의 최 서단 도시 '커스(카슈가르)'입니다.
대략 2,200Km 쯤... 나름대로 긴 여정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실크로드 여행은 우루무치와 둔황을 중심으로 유적을 살펴보는 정도이지만
우리 일행은 일반인들이 잘 선호하지 않는,길고 긴 험로를 선택했습니다.
삼장법사나 혜초스님의 고행에 견주어 만분의 1일이라도 몸으로 느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객기는 우루무치에 한 밤에 도착했습니다.
8월 5일 아침에 호텔에서 내려다 본 우루무치의 전경입니다.
우루무치가 광주보다 훨씬 큰 도시라는 것을 깨달은 아침이었습니다.
'우루무치'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입니다.
14세기말 서몽골이 이 곳을 지배할 때의 지명이 지끔까지 이어져왔습니다.
면적은 12,000평방미터, 인구는 유동인구포함 230만의 공업도시입니다.
우루무치는 신장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이번 여행지 중에서 한족(75%)이 가장 많이 사는 곳입니다.
(한족은 우리가 말하는 보통의 중국인종)
참고로 트루판은 위구르족70%, 허이텐은 위구르족96%, 커스는 위구르족89%입니다.
신장에는 위구르족이 주류입니다.
위구르족 45%, 한족 40%
홍복호텔 앞 길입니다. 아침 식사 전에 스케치했습니다.
우루무치는 얼마전만해도 8층 건물이 최고였으나 지난 5년간 눈부신 성장을 했다고 합니다.
첫번 째 관광코스(?)인 남산목장을 향하는 길입니다.
한국에서 온 불청객들을 호락호락 통과시키지는 않을 모양이군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루무치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이 길이 신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천산산맥이 보입니다.
남산목장의 전경입니다.
이곳 남산목장에서는 카자흐족들이 관강객을 상대로 말을 태워주는 수입으로 살고 있습니다.
신장에는 15,000명 정도의 카자흐족들이 살고있습니다.
카자흐족은 주로 카자흐스탄과 중국의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인접 지역에 거주하는
기마유목민족입니다.
남산목장 스케치
이곳 카지흐족들은 주로 게르에서 생활합니다.
관광객들이 목장에 도착하면 우선 모두에게 말의 채찍이 주어집니다.
받아 든 채찍을 들고 있으면 채찍의 주인들이 찾아와 자신의 말을 태워줍니다.
"아자씨, 제가 아자씨 채찍의 주인이요. 갑시다!"
"머시여, 꼬마 니가???"
보통은 젊은 사람들인데 저는 맨 막둥이 10살박이 카자흐 꼬마가 당첨되었습니다.
"뭐해요? 빨리 올라 타세요"
카자흐족들은 10살이 되면 승마로 돈을 번다더니 정말이군요.
제가 안장에 타고
꼬마는 저의 뒤에 타고
남산목장을 올라갑니다.
"이랴!!!"
제가 탄 말은 늙은말이기도 하거니와 엊그제 비가 많이 와서 바닥은 곤죽이 되어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낙마를 하게되면 진흙탕에 빠지는 신세가 됩니다.
앞에 탄 사람들이 관광객, 뒤에 탄 사람들이 카자흐족들입니다.
"끼랴!!!"
숨막히는 긴장 속에 목장 중턱에 올랐습니다.
숨이 확 트이네요.^^
이보다 푸른 하늘이 지구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루무치 지역에는 연간 강수량이 200mm가 채 되지 않습니다.
연간 강수량이 200mm 이하면 사막으로 분류되고, 200~500mm이면 초원으로 분류됩니다.
이곳에선 강수량이 부족하여 벼농사는 짓지 못합니다.
주로 해바라기, 깨, 감자를 재배합니다.
우리 일행은 벌써 우루무치를 벗어나 투루판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가는 길목에 풍력발전소 지대를 답사했습니다.
이곳은 독일 다음으로 세계 제 2위의 풍력발전 지대입니다.
뒤로는 수백개의 발전기가 있고 앞으로는 천산산맥과 만년설이 드러나고있습니다.
이곳은 1년에 바람이 딱 한번만 분다고합니다.
바람이 그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도 바람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투루판으로 가는 길은 완전한 고비사막지대입니다.
여기서 고비사막이란 몽골과 내몽골 사이의 사막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주로 모래가 아닌 자갈로 이루어진 사막 또한 '고비사막'으로 부른다고합니다.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312도로라고 불리는 이 고속도로는 길이가 5,000Km에 이르며 멀리 상하이까지 연결된다고합니다.
우루무치와 투루판 사이에는 천산 산맥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천산 산맥을 유유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3~4시간을 달려 트루판에 도착했습니다.
트루판이란 돌궐어로 '풍요로운 곳'을 뜻합니다.
트루판은 신장에서 가장 무더운 분지형 오아시스 도시입니다.
지표가 해수면보다 낮고 사방이 산맥으로 애워싸져 있기 때문에 더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여름철 한 때는 채감온도가 70도까지 오른다고 하니 가히 살인적인 더위입니다.
트루판의 별명은 '문명의 용광로'입니다.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저)
천산도 식후경이라...식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등나무 그늘이 잘 조성되었군요.
잠시 후에 알게되었지만 포도나무 그늘이었습니다.^^
투루판은 포도와 면화의 최대 산지입니다.
청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있습니다만 호기심에 따면 벌금을 물게된답니다.
포도나무 그늘의 관광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투루판의 유명 식당입니다.
빨간색은 곧 중국을 상징합니다.
중국의 공공기관, 식당, 호텔 등의 간판은 대부분 빨간색으로 씌여져있습니다.
투루판의 전통과 현대미를 잘 조화시킨 건물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중국식 식단입니다.
시작부터 기름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식후 연초 대신 식후 스케치입니다.^^ 식당 앞 나무...
식사를 마치고 '카레즈'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트루판 시내 곳곳에는 청포도와 건포도를 파는 상인들로 가득차있습니다.
카레즈 입구입니다. 무지 덥지만 참을만 하군요.^^
'카레즈'는 전 세계에 중앙아시아 지역 세나라 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관개시설입니다.
연평균 강우량은 16mm인데 증발량은 3,000mm인 이곳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위대한 '카레즈'를 건설했습니다.
카레즈를 설명하겠습니다. 위의 사진을 유심히 보십시오.
맨 위에 천산 산맥이 있고 그 아래 사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막 아래에 트루판이 있습니다.
이곳의 용광로 더위는
천산의 만년설이나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트루판에 채 도착하기전에 하늘로 증발시키고맙니다.
이에 분한 인간들은 땅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땅굴 속으로 천산 산맥의 차가운 물이 증발하지 않고 흘러내려 트루판 호수까지 흘러 들어옵니다.
배꼽처럼 길게 이어진 선의 보이지 않는 지하 수로가 카레즈입니다.
땅굴이 막히거나 하면 배꼽처럼 생긴 구멍으로 인부가 들어가 보수를 하게 됩니다.
카레즈의 단면입니다.
아래쪽이 수로이고 위쪽이 보수를 위한 통로(배꼽)입니다.
카레즈의 내부입니다. 실제 카레즈에 모형도가 설치되어있습니다.
비계를 받치지 않은 이 구조물은 건조한 땅이기에 가능한 일일것이라고 저는 생각해봤습니다.
카레즈 답사를 마치고 천년 고성 '교하고성(交河古成)'을 방문했습니다.
교하고성의 모형도입니다.
교하고성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버들잎 모양의 오래된 성입니다.
트루판 제 1의 관광 명소입니다.
성의 높이는 30미터의 벼랑 위에 지어졌으며 양쪽으로 강이 흘러 아래쪽에서 하나로 만납니다.
(지금은 모형에서 보는것처럼 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결국 사방이 하천형 방어벽으로 애워싼 안전 요새인 셈입니다.
2천년 전 차사전국의 수도로 불교 사원 구역이었습니다.
인도식 불교건축양식이 많이 발견되는 곳입니다.
교하고성의 남문입니다.
당나라때는 이곳에 6,000여명이 거주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의 위쪽입니다.
위에서 보면 평평한 교하고성은 쌓아서 지어진 성이 성이 아닙니다.
30미터 높이의 분지를 기준으로 땅을 파서 아래쪽으로 형성된 성터입니다.
민간 주택 단지입니다. 역시 기존의 땅을 파해쳐 이룩된것입니다.
2천년 전의 아파트로 생각하심이...
사진에 없는 왼편으로는 '애기묘' 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유골 200여개가 발견되었는데...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질병의 설, 점령군 몽골족의 씨말리기 정책, 몽골과의 패전 직전 자진 교사설 등이 있습니다.
몽골 군사들은 이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주변을 포위하여 오랫동안 고립시킨 후, 항복을 받고 대부분을 학살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하고성에서 멀리 보이는 상자 같은 구조물이 있습니다.
건포도를 만드는 건조 시설입니다.
투루판의 농가를 방문했습니다.
삼륜차를 보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나는군요.^^
농가의 입구 천장은 포도 천지였습니다.
노인 한분이 양을 도살하고 있습니다.
몽골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에서 주식인 양 한마리를 도살하는데는
칼 한자루, 바닥 천 조금, 약간의 시간, 그리고 물은 한방울도 필요없습니다.
몽골 여행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양을 도살 할 때는 양을 반듯이 눕히고, 목 아랫 부분을 날카로운 칼로 5cm 정도 절개한 다음
손을 가볍게 집어 넣습니다.
이 순간도 양은 눈을 뜨고 주인을 황당하게 바라봅니다.
손이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양의 따뜻한 심장을 매만질 수 있습니다.
팔닥 팔닥 움직이는 심장의 동맥을 찾아 힘껏 쥐면 양은 즉사합니다.
.....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 일행에게 과일 한상을 차려 귀빈 대접을 하더니
집주인의 딸들이 나와 위구르족 전통 춤을 춥니다.
위구르족 여성들은 뛰어난 미모를 지녔습니다.
대한민국 여성들과 마찬가지로...(무사히 귀환하기 위하여^^)
정식 공연이 끝나자 이게 또 웬일입니까?
동내 꼬마 녀석들이 모두 나와 춤을 춥니다.
솜씨가 섬뜩하군요.^^
과일상에 포도주와 건포도...그리고 춤까지...
공짜~
우리 일행은 한 순간에 양심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건포도입니다. 니들이 안사고 배겨?
....
전혀 밉지가 않군요.^^
대한민국 장사하는 분들이 꼭 배워야 할 덕목입니다.
건포도를 사는 풍경 스케치입니다.
저는 건포도를 사지 않았습니다. 건포도를 건조할 때 황을 사용한다는 속삭임을 버스 안에서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달디 단 건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녁식사는 현지 한국 식당에서 김치와 삽겹살을 먹었습니다.
식당 앞에는 거대한 포도 그늘막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쿠처를 가기 위해 트루판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트루판역은 시내에서 무려 1시간을 차로 달려야합니다.
이유는 트루판 시내(분지)에 기차가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합니다.
트루판 역입니다.
역사는 이곳 중앙아시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건축물입니다.
중앙아시아의 건축물에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투조식 건축물 또는 간판이 많습니다.
투조란? 조각의 장르에서 배경 부분을 떼어내어 여백을 나타내는 기법입니다.
중앙아시아의 간판 또는 시설물에서는 틈틈히 뚫어진 틈새로 하늘이 드러납니다.
그들의 삶과 영혼이 곧 맑은 하늘인 샘입니다.
제 생각이었습니다.^^
새벽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트루판 역전에서 모두 모여 정겨운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역전의 상큼한 바람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었습니다.
이번 여행 식구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전교조 전남 교사들 9명,
전국 각지에서 신청한 네분....그래서 합이 13명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고생스러운 코스이다보니 황금 휴가철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겨우
13명이 모였습니다.^^
저는 술 기운을 벗 삼아 일행들의 모습을 스케치했습니다.
그 중 가장 잘 그려진 스케치인데
이 친구 아내가 보아서는 안됩니다.
담배를 끊었던 친구입니다.^^
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열차는 쿠처역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가는 길 내내
회색빛 모래밭일 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