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기행 3 (허티엔 - 잉지사)
8월 8일 아침 일찍 민펑을 출발 허티엔(호텐)으로 향합니다.
8월 4일밤 한국에서 출발했으니 날짜로는 벌써 5일째로군요.
허티엔까지는 315Km. 5시간 예상합니다.
제법 피곤해진 몸을 버스 의자에 의지해 잠을 청해보지만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머리에 충격이 전해지는군요.
허티엔으로 가는 길 역시 고비사막(자갈사막)길입니다.
'위텐'이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치는 순간
양쪽으로 낮익은 푸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게 뭐야! 나락이잖아"
나락은 벼의 사투리입니다. 신장에 와서 처음으로 벼농사 현장을 보았습니다.^^
서역길에서 물이 가장 풍부한 곳입니다.
평화롭게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이곳에서 한가지 에피소드가 발생합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식당 여주인과 아들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해 인화지를 건냈습니다.
반응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너무나 신기해하고 좋아 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도 마음껏 셔터를 누를 수 있었습니다.
여행 때는 현지인의 마음을 여는 그 무었이 필요합니다.
작은 선물, 폴라로이드, 그리고 저는 스케치입니다.^^
허티엔 외곽에 다달았을 때, 넓은 강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강 어귀에는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 않고 현지인들이 옥을 줍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온대성 건조기후대로서 추위나 더위가 심하지 않으며,
쿨룬산맥에서 흐르는 '백옥하'와 '묵옥하'가 양쪽으로 흘러 매우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답니다.
백옥하에서는 백옥이 묵옥하에서는 검정색 옥이 많이 나는가 봅니다.
과거에 이곳 허티엔을 '우기'라고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티벳어로 '옥이 나는 곳'이란 뜻입니다.
허티엔현의 인구는 120만, 허티엔시는 20만 정도입니다.
위구르족이 95%입니다.
신장 사람들은 청소를 열심히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 집 앞부터 깨끗이 쓸고
보시다시피 큰 길에서도 하루 종일 비질이 멈추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아침이면 모두 나와 집 앞을 쓸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청소차가 생긴 이후로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집 앞에 눈이 쌓여도 나몰라라합니다.
이제 그런 집에 벌금을 물린다니 잘 된 정책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인상을 짙게 풍기는 동상입니다.
힘찬 모습이군요.
신장 지역은 작은 도시들도 길이 굉장히 넓습니다.
눈에 보이는 차선 말고도 바깥쪽으로 주차차선이 한 줄 더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넓은 땅이 부럽기도 하군요.
우리가 묵을 호텔 앞의 이슬람 성전 모양을 한 백화점 건물입니다.
제가 보기엔 지붕을 동으로 만든것 같은데 아름답군요.^^
맛있는 점심을 먹고...
호텔 로비에 나왔더니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최초의 한글이 우릴 반겼습니다.
이거, 웃어야 할지...찡그려야 할지...
날쌘돌이 일행 한 분이 조사를 하고 왔습니다.
"보통 싸우나는 아닌것 같구만이라."
위대한 대한민국의 손길이 이곳을 주름잡는 때도 멀지 않았군요...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백옥하 주변의 고성 터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곳에서 드디어 나귀차를 탈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비교적 반가운 얼굴로 이방인들을 반깁니다.
목적지 까지 나귀차의 요금은 1인당 10원입니다.
신장의 작은 마을에서는 차보다 나귀차가 훨씬 많습니다.
앞의 남자가 쓰고 있는 위구르 전통 모자는 '도빠'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풍부한 자외선 지대에서 하필 차양이 없는 모자를 택한 그들의 선택은 무었일까요?
나귀차 값을 지불하니 덤으로 사진 촬영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위구르인들도 세가지 계열로 나누어진답니다.
러시아계, 아랍계, 그리고 한족계.
제 안목으로 두 여자 아이는 러시아계로 생각됩니다.
'위구르'는 단결 또는 단합의 뜻을 가집니다.
맨 오른쪽 일행 분은 화가이신데 태극기 머리 수건을 만나는 아이들마다 머리에 묶어주었습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힘을 압도하는듯 합니다.^^
제가 선택한 나귀차의 주인 여성입니다.
작지만 매우 다부지고 아름다운 눈썹을 가졌군요.^^
이슬람은 철저한 남존 여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히잡을 두르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의 대조적 운명이 느껴집니다.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이나 가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쓰는 가리개(쓰개)를 말합니다. 색깔은 화려하며, 다른 이슬람권 여성들이 몸에 두르는 망토보다 쓰고 벗기가 쉽습니다. 이란 등지의 시아파 여성들이 입는 검은색 차도르(chaddor),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입는 검은색 아바야(abayah),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아라비아반도 일부와 베두인족(族) 일부 여성들이 입는 부르카(burqah) 등이 신체의 대부분을 가리는 것과 달리 머리와 가슴 일부만을 가린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이 어린아이는 제가 탄 나귀차에 무임 승차를 한 녀석입니다.
우리가 탄 나귀차가 맨 나중에 출발을 했는데
글쎄 한 여성이 이 아이를 안고 나귀차 뒤에서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나귀차를 정지시키고 어린애를 안아서 실어줬습니다.
그 여인은 고맙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잠시 그러다 보니 우리 나귀차가 뒤로 쳐지고 말았습니다.
어이쿠, 빨라가자. 이랴!
재미있었냐고요? 글쎄요. 재미있는 만큼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이십여분을 나귀차와 함께 달린 이 여인들은 모두 플라스틱 슬리퍼 차림이었습니다.
겨우 앞차를 잡았는데 거기에도 젖먹이 아기가...
위구르족 아이들은 대부분 머리가 마빡이입니다.^^ 우리도 그랬었지요.
위생적으로는 그만이지요.
고성 지대에 도착했습니다.
허,,,이게 고성이라고?...
옛 고성의 찬란한 흔적은 사막의 모래바람에 의해 이렇게 파묻치고 말았습니다.
한 나귀차를 끌고 왔던 어린아이입니다.
짜식이 미모에 자신이 있더군요. 사진기를 들이대도 꿈쩍을 안합니다.^^
이번 여행 중 이슬람계 미모의 여성들과 단 한번도 사진 촬영을 하지 않은 사람이
딱 한명 있었습니다.
바로 저입니다.^^
몽골 여행 때 미모의 호텔 프론트 아가씨에 대한 연민의 글을
제 블로그에 올렸다가 제 아내에게 된장 혼줄이 났었기 때문입니다.^^
천년의 고성 위에서...
갑자기 나귀차 주인들이 옥을 파는 상인으로 변했습니다.
"옥 사시오 옥을 사!"
저에게 아기를 맡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뒤따라온 여인의 속내를
뒤늦게 알게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사지 않으면 나쁜 놈이죠.^^
30원을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왈 "우리 애기에게도 10원만 주세요"...
몸짓이지만 다 알아들었습니다.
조금 당황했지만 까짓것 10원을 주었습니다.
아뿔사!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모두 애를 데리고 와서 10원 씩 달랍니다.
에이, 까짓것 하고 3명에게 주었습니다.
완전 아뿔사!!!
이번엔 멀쩡한 남자어른들까지 몰려와 10원씩 달랍니다.
36계~~~~줄행랑.^^
결국 옥값보다 많은 40원을 치르고도 원성만 사고 말았습니다.
이곳은 허티엔 박물관입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솥과 물단지입니다.
이곳에서도 사진 촬영은 금지입니다.
나야유적지, 라와크 불사유적 등에서 도굴 당하고 남은 몇몇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세계사에서 강탈했거나 도굴한 유물들은 제 나라에 반납해야 하는 것이 도리 아닙니까?
일본과 유럽 등지에 있는 우리나라 유물들도 마찬가지죠.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합니까?
유엔? 나토? WTO? 탈레반? 부시? 아베? 야쿠자?
차라리 칠성파가 나을까요?
정답은 '국력'입니다.
옥으로 새긴 조각품입니다.
이건 돌로 만든 상입니다.
청옥으로 만들어진 국보급 상입니다.
잘 건조된 미이라입니다.
2층 민속실은 사진 촬영이 허락되었습니다.
비단길에 왔으니 비단은 꼭 봐야죠.^^
굉장히 질이 좋고 섬세한 복장입니다.
왕서방 생각이 나는 비단입니다.^^
이곳은 카페트의 주요 산지이기도 합니다.
쇼핑점에서 질 좋은 카페트의 가격을 물었다가 입이 다물어지질 못했습니다.
이제 1000년 수령의 호도나무를 구경하러 가는 길입니다.
앞에서도 소개했던 미루나무 군락지인데
정수일 교수의 책에서는 백양나무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검색을 해보니 백양나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안내판에는 1500년 가까운 호두나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우람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 고목은 많습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허티엔 인민광장을 살펴봤습니다.
마오쩌뚱이 지방 종교 지도자였던 꾸얼반을 맞이하는 동상입니다.
신장 지역은 과거 소규모 독립운동이 있었지만 아직 대세는 아닌 듯 합니다.
아래 문구를 대충 내려치면 '우리 모두 단결해 나가자!' 뭐 이정도 아닐까요.^^
동상에서 바라본 인민광장입니다.
국기대 밑 부분 뒤 쪽으로 커다란 옥석을 위에 둔 첨성대 정도 크기의 조형물이 보입니다.
기억해두세요.^^
허티엔 인민광장 스케치입니다.
스케치를 하는동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하더군요.
아이들 몇명의 얼굴을 간단히 그려주었는데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비슷한 위력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조형물 주위에 서 있다가
갑자기 바닥에서 분수가 분출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외지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물벼락을 맞고 카메라를 버릴 위험이 클 것 같군요.^^
시원한 인민광장의 동영상입니다.
우리 광주에도 이런 유형의 분수대가 있었으면...생각해보았습니다.
저녁 식사 후 본격적으로 옥 제품을 구경하기 위해 쇼핑점을 방문했습니다.
제품의 차이는 있었지만 오전에 나귀차 주인들에게 산 가격보다 훨씬 비쌌습니다.
허티엔에서 옥을 싸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하우 머치?"
"1000원 달라"
"무시기? 100원에 달라"
"웃기고 있네. 그냥 가라."
---이 때 정말 나가는 모션을 취합니다.---
"아,,,잠깐 잠깐,,,300원 달라 달라."
"200원에 달라"
"쩝, 가져가라. 퇘!"
"땡큐"
아시겠죠?^^
다섯번 째 잠을 자고
대장정(?)의 마지막 종착지 커스(카슈가르)를 향해 힘차게 출발합니다.
"너희들 어디 가니?"
"보면 몰라요? 학교 가잖아요."
"방학 아니니?"
"보충수업 모르세요?"
"헉!"
이제 커스까지는 11시간이 예상됩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길이 되겠군요....
대한민국은 변소의 천국입니다.
신장에 오셔야 깨닫습니다.
대~충 이렇습니다.
지형이 적당히 굴곡진 곳에 차를 세우고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습니다.
"남성분들은 오른 쪽, 여성분들은 왼쪽에서 알아서 해결하세요."
예쁜 처녀들은 반드시 결혼 후, 아이까지 낳고 신장에 오세요.^^
고비사막의 표면입니다.
일직선...그리고 지평선...
커스여 내가 가노라...
가는 길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양고기 꼬치를 샀습니다.
왠일입니까? 꿀벌들이 수도 없이 달겨붙는군요.
꿀벌과 함께 드시면 좋습니다.^^
폴라로이드의 위력이 또 다시 발휘되고 있습니다.^^
신장에 가실 때는 폴라로이드 꼭 챙겨가세요.^^
쿤륜산맥에서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립니다.
장이 들어섰군요.
전형적인 위구르족 가옥입니다.
미루나무(백양나무?)가 있고 흰 페인트칠을 한 담장입니다.
집앞은 항상 반들반들하게 쓸어놓습니다.
그래야 알라신이 편히 들어오신답니다.
또다른 형태의 묘지입니다. 각 도시들 마다 매장 풍습이 다채롭군요.
커스로 가는 길목에 '잉지사(영길사)' 칼 시장에 들렸습니다.
이곳에선 주로 조폭용 칼이 성업을 이룹니다.
전 가운데 넙적하게 번쩍이는 칼이 가장 마음에 드는군요.
농담이고요. 주로 양을 잡을 때 쓰는 칼입니다.
위구르인 남자들은 머리엔 '도빠'를 쓰고 허리엔 멋진 칼을 차는 것이
전통의 모습입니다.
칼을 잘 못 사시면 공항 검색에서 모두 빼앗깁니다.
길이가 30cm를 넘으면 안됩니다.
일행 중 한분이 칼 한자루를 그만 배낭에 넣고 비행기 탑승 검색을 받다가 혼줄이 났습니다.
칼을 직접 제작하고 있습니다.
칼 제작소에서 심부름하는 아이입니다.
이곳 잉지사는 상당히 큰 규모의 칼 시장이 형성되어있습니다.
섬뜩하시죠?
저도 착한 일 하겠습니다.^^
커스에 거의 다다를 무렵 길 양쪽에 만개한 홍유나무가 아름답게 우릴 반깁니다.
세번째 이야기를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