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기행 마지막 ( 카슈가르 - 우루미치)
이번 여행의 종착지 카스(카슈가르)의 품으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맨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결혼식 행렬이었습니다.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결혼식 차량을 다섯대 정도 만났습니다.
오늘은 8월 9일 목요일입니다.
평일날인데 아마도 이 날이 길일(吉日)인듯 싶습니다.
위구르인들은 결혼식을 치루면 친지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첫날 밤을 지내는 것으로
그만입니다. 신혼여행 따위는 없습니다.
카슈가르란 위구르어로 '처음으로 창조된'이라는 뜻입니다.
중국 최 서단의 오아시스 도시로 동쪽으로는 타클라마칸사막,
서쪽으로는 파미르 고원,
남쪽으로는 쿨룬산맥으로 에워싸여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도 바로 옆입니다.
다른 도시와는 달리 오토바이 행렬이 눈에 띄는군요.
인근 현 지역까지 합하면 인구 500만, 카슈가르시는 35만 정도입니다.
택시도 많고 도시가 솔차니 산뜻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창 밖의 풍경을 스케치했습니다.
여느 오아시스 도시와 달리 규모도 크고 생기가 있어보입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커스행을 고집한 이유는 정수일 교수가 쓴 실크로드 문명기행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행선지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카슈가르는 신장의 모든 것을 응축한 축도이다. 이곳을 보면 신장을 알 수 있다.
카슈가르에 오지 않고는 신장에 왔다고 할 수 없다.'
이러니 이곳에 오지 않고 배겨낼 수 있었겠습니까?^^
커스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신장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에티칼 마스지드'입니다.
'마스지드'란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는 곳이란 뜻입니다.
이슬람 사원을 또한 '모스크'라고도 부릅니다.
에티칼 마스지드는 정원을 포함하여 16,800평방미터이며 평일에는 2~3천명, 금요예배때는 6~7천명,
9월 단식월이 끝난 개재절 때는 수만명의 예배자들이 발디딜 틈 없이 몰려든다 합니다.
참고로 중국은 주 5일제를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에티칼 마스지드 광장 반대쪽 풍경입니다.
모스크 입구에 무화과 나무 화분이 있습니다.
이 더위에 긴 코트와 장화를 신고 있는 노인의 표정에서 인내심을 발견할 수 있군요.^^
이곳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퀴즈 한 문제 내겠습니다.
절에 가면 부처님을 보고 절을 합니다. 성당에 가면 예수나 마리아상을 보고 기도를 합니다.
모스크에서는 누구를 보고 기도를 하겠습니까?
정답은 잠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모스크를 방문했을 때는 신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한 신자가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모스크 안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어떤 기념이 될만한...혹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여길만한 그 어떤 상징물도 없었습니다.
딱 한 곳, 꾸며진 이 곳은 지붕이 달린 화려한 의자과 세계 각지의 시간이 표시된 시계들이 있습니다.
퀴즈의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신은 형상이 없습니다.
때문에 무슬림들은 가정이나 모스크에서 또는 아무 곳에서 보이지 않는 유일신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무신론자인 저의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마호메트의 사상에 경의를 표하고싶습니다.
"신은 형상이 없다"
제가 보기엔 매우 철학적이고 매우 종교적이고 매우 인간적이군요...
세상에,,, 여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 담장에서 즐겨 따먹었던...추억의...
꼬마에게 1개를 사서 맛보았습니다.
세상의 과일 중, 여자 속보다 더 붉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바크 호자 묘당' 입니다.
신장 사람들의 자존심을 담고 있는 이슬람 건축술의 상징입니다.
묘당의 출입문은 이런 종류의 수많은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묘당 본 건물입니다.
이곳 역시 정교한 타일로 화려하기 그지 없게 장식되어있습니다.
마치 비단으로 에워 싼 것 같군요.^^
묘당 내부입니다.
사실 이곳은 이슬람 지도자 아바크 호자보다도 그의 몇 대 손녀인 향비의 묘가 더 유명합니다.
그래서 '향비묘'라고도 불리웁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의 몸에서 향내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향비가 26세 때 청나라 건륭황제에게 바쳐졌지만
절개를 지키다가 요절했다고 전합니다.
이곳의 무덤들은 흡사 텐트 모양의 천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맨 오른 쪽 위, 멀리 꽃 모양이 달린 작은 묘가 향비묘입니다.
걸어가는 일행들의 뒤를 ?으며 스케치를 하려니
가랑이가 아닌 손가락이 찢어질 것 같군요.^^
묘당 내의 중간 문입니다.
이곳 커스의 명물로는 거대한 시장 '바자르'가 존재합니다.
중국과 서역을 오가는 교역물이나 사람들은 모두 이곳을 경유하였답니다.
현장스님이나 마르코 폴로는 물론, 많은 탐험가들이 이곳을 통해 중국에 침투하였으며
혜초스님도 727년 인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들러 귀중한 현지견문록을 남겼으며,
고선지 장군도 서역 원정을 단행할 때 모두 이곳을 경유하였다 합니다.
우리 일행도 바자르에 침투했습니다.
앞으로 30분 후 이곳에서 은밀히 만난다. 오바!
남대문 시장 정도의 규모랄까?
남대문에 가본지가 꽤 돼서 잘 모르겠군요.^^
하여튼 일요일이면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 난리가 나는 곳이랍니다.
온갖 잡화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군요.
그렇지만 제 욕망를 채우는 물건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전 짐승의 뿔을 손잡이로 만든 말의 채찍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용도는 매일 아침 둘째 형석이를 깨우는 것으로 말입니다.
녀석이 요즘 정신 상태가 헤이해져 물총을 쏘아도 이불로 막으며 일어나지 않습니다.
더욱 고단위 처방이 필요합니다.
채찍 한 방이면 벌~떡 일어날텐데...^^
짝!!!!!!!!!
비단 코너
진열장 위의 채찍을 들고
"꼬마야, 이거 얼마니?"
" 나 몰라 해"
"머시여? 주인장 어디갔냐?...아니 사장님 어디 갔냐?"
"기도하러 갔어라..."
아니 이냥반들 장사도 안하고 기도를 혀?
바자르 한 쪽에서 상인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번 씩,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올립니다.
첫번째 기도 : FAJR(파즈르) 새벽에서 해뜨기 사이에
두번 째 기도 : ZUHR(주흐르) 정오에서 오후중반 사이에
세번 째 기도 : ASR(아스르) 오후중반에서 해지기 사이에
네번 째 기도 : MAGHRIB(마그리브) 해진 직후에
다섯번 째 기도 : ISHA(이샤) 밤에서 새벽사이에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사람들을, 겨우 일주일에 한 두번 교회가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뭘 어쩌겠다는건지...?
.......
제발, 타 종교를 깨부시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배타적 종교관 때문에 지금도 지구는 피로 얼룩져 가고 있습니다.
카슈가르를 떠납니다.
이제 우리 여행은 지리적으로는 끝이 났습니다.
"커스여, 안녕."
제 평생 아마도 다시는 못오겠지요...
커스 공항을 이륙한 중국 국내선 여객기는 우루무치를 향했습니다.
항로는 천산산맥 위을 고스란히 종주합니다.
만년설에 덮인 봉우리들이 황홀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다시 우루무치로 돌아왔습니다.
우루무치에는 나귀마차가 없었습니다.
우루무치에는 히잡을 쓴 위구르여인도 없었습니다.
한국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인솔자이신 여행사 사장님의 이상한 행동이 있었습니다.
제 옆에 앉아 있던 선생님을 다른 쪽으로 강제로 보내더군요.
그러더니 한참 후 케익을 가져와서 제 옆에 놓고서
제 머리에 종이 왕관을 턱 씌우더니 저와 모든 일행들에게 그러더군요.
"박철우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라고요
저는 "멍"하고 말았습니다.
"멍" "멍" "멍"
식당 사장님이 미역국까지 특별 서비스하더군요.
제 인생의 신조는 적어도 생일 따위로 남들에게 불편을 끼치지는 않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부로 신조가 깨지고 마는군요.
사연은, 아내가 여행사 사장님의 로밍 된 전화기에 생일 축하 메세지를 보냈고,
제 생일 임을 알게된 사장님이 과잉 서비스(?)를 한 것입니다.
고마운 답으로 친절한 여행사를 공개하겠습니다.
광주 유니버스 여행사 (이정상 사장님)^^
전화번호도 적을까요? ㅎㅎㅎ
062-522-2255
호텔 근처 야시장인데 대낮부터 겁나군요.
확실히 중국인들은 한국인보다 노는 일에 몰두합니다.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그렇고요.^^
이 날 밤에 우리 일행도 야시장에서 한 잔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곳 상인들 흉 좀 보겠습니다.
하미과를 파는 어떤 젊은이는 우리가 하미과를 사지 않자
하미과를 자르던 칼을 탁자에 위협적으로 놓으며 협박을 하더군요.
그리고 이곳에 오면 총을 쏘는 게임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마십시오.
갯수를 조작한 후 벌 떼 같이 달려들어 협박을 합니다.
경찰이 왔지만 그들도 한 패나 다름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 일행은 크댐한 바가지를 쓰고 말았습니다.
우루무치 야시장은 서울의 밤보다 무섭습니다.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천산천지를 향했습니다.
천산천지는 우루무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산 중턱의 큰 호수입니다.
타클라마칸 사막 지대 보다는 물이 풍부하군요.
천산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수입니다.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연상시키는군요.
전기 자동차와 곤돌라를 타고 쉽게 천지에 올랐습니다.
이곳 '천산 천지'는 백두산 천지와는 좀 다릅니다.
백두산 천지는 산의 정상에 호수가 발생됐지만
이곳은 산의 중턱에 발생된 호수입니다.
대궐모양의 유람선이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만년설을 빼고는
백두산 천지 보다 왠지 영감이 없어 보입니다.
많은 관광객과 유람선 때문에 오염된 물이 걱정스러웠습니다.
여기는 우루무치 박물관입니다.
신장지역의 유물과 특히 한족을 비롯, 소수 민족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상당히 잘 보존된 미이라입니다.
미이라가 출토된 석관의 구조입니다.
우루무치 시내의 홍산공원입니다.
우루무치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우루무치 전경 중, 이 곳이 으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5년 전만 해도 8층 건물이 최고였던 우루무치가 초 고속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중국의 겁 없는 발전을 보고 겁이 나십니까?
머지 않아 중국도 껍질보다 속까지 채워진다면...
정말 겁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경제에 올인 중입니다.
이런걸 보면 가끔은 왜 슬퍼집니까?
.......
유럽을 가도 벗고, 중국을 가도 벗고,
저도 찜통 기후인 요즘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고 싶습니다.
우리 학교 여학생들 치마 길이는 날이 갈수록 짧아지는데
선생님들 바지 길이는 不動입니다.^^
이제 9일간의 긴 여정,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신장의 민속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특단의 야외 부페에 들렸습니다.
이런 야외 부페는 처음입니다.
공연 무대를 배경으로 1000석 정도의 식탁이 놓여있고
야외 부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마음껏 음식을 먹으면서 민속 공연을 즐기게됩니다.
공연은 신장 소수민족들의 춤과 음악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분위기가 산만하여 공연에 집중하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습니다.
객석 위로 시선이 집중되며
줄을 타는 광대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이별의 손짓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공연이 끝나면 공항으로 향하고
9일간의 실크로드 답사를 마칩니다.
'실크로드는 문명을 낳아 키우고 오가게 한 길이다.
지구의 동서남북을 소통시키고 인류역사의 어제을 오늘로 이어주는 길이다.
사막이나 바닷물에 묻혀버린 죽은 길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길이다.'
우리 팀들이 실크로드 여행을 준비하던 올 해 6월 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린 역사교사 모임에 정수일 교수가 초청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교과에 상관없이 모두 참여하여 그 강연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신 정수일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