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석이의 하숙집
우리집
둘째 아들 형석이...
태어난지 19년만에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S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S대학이란 성균관대학교 수원캠퍼스를 말합니다.
수능 1주일 전 삭발을 하고 전의를 불태우길래
저와 아내는 서울의 S대에 합격하나 잔뜩 기대를 했습죠.
주변에서는 성균관대학도 겁나게 좋은 대학이라고 말해주니
그렇게 믿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녀석의 좌우명 이랍니다.
'시험은 잘 볼 때도 있고, 못 볼 때도 있다.'
부모인 제가 할말은 "잘했다. 내 아들" 뿐입니다.ㅠㅠ
그런데...
입학 초부터 몇가지 일들이 꼬여 녀석의 대학 생활이 순탄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첫째는 입학식부터 결석을 한 것입니다.
하필이면 입학식과 검도 3단 심사가 겹쳤는데 녀석은 후자를 선택한 것입니다.
검도 심사에 합격을 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문제는 개학하면 어느 교실에서 첫 수업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
두번째는 녀석이 기숙사 선정에서 보기 좋게 낙방을 한 것입니다.
성대에는 상당히 많은 기숙사 시설이 있는데 녀석의 과용 때문에 낙방을 한 것입니다.
부모 말을 안 듣고 몇개 안되는 호텔 수준의 4인 4실을 지원했다가 자멸한 것이지요.
저와 아내는 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이제 꼼짝없고 지체없이 수원으로 달려가 비싼 하숙집을 구해야 할 판입니다.
...
그러다 며칠 후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아내가 하소연을 했는데 그 친구분 왈
성대 바로 옆에 천주교 수도원이 있고 주임 신부님을 잘 알고있으니 방을 한 개 내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식구는 저만 빼고 모두 천주교 세례를 받은 터였습니다.
더군다나 아내가 기억을 더듬어보니 수년 전 그 친구에게 이끌려 기도를 갔던 곳이랍니다.
제가 판단을 망서리고 있는 사이에 아내와 형석이는 합의를 끝내고 말았습니다.
참, 세상은 좁고 인연은 넓은가 봅니다.
졸지에 녀석은 당분간 수도원에서 신부님과 수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형석이의 하숙집,,, 크고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님 상이 있는 건물 2층 맨 오른쪽 방입니다.
기가막힌 것은 주임 신부님의 바로 앞방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녀석이 대학생이 되어 만끽하려던 자유와 수도원 생활은 상호간 난감한 함수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
수도원의 이릅입니다.
'바다의 딸'로 불리는 장애인 보호 시설입니다.
이 수도원에는 50여명의 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답니다.
수도원 내부의 조그마한 성당입니다.
맨 왼쪽에 앉은 분이 이 수도원으로 안내해주신 아내의 친구분... 형석이,,, 아내.
저도 기꺼이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신도들 대부분이 장애우들입니다.
좌석이 다 들어찰 무렵 어떤 친구가 갑자기 저에게로 다가오더니
저의 턱을 손으로 척 들어보더군요. 그리고 씩웃으면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조금은 이상한 표정과 소리 그리고 몸짓들을 하면서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부님이 들어서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했습니다.
환호성 중에는 "아버지"와 "아부지"가 가장 많았습니다.
신부님은 담담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미사를 집전해 나갔습니다.
미사를 하는 중, 어떤 장애우는 혼자 일어나 중얼거리며 장내를 걸어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면 수사님들이 조심히 대려다 제 자리에 앉혀주기도 합니다.
어떤 장애우는 사진에서 처럼 성당 한 가운데 주저 앉기도 하고 또 어떤 장애우는 의자에 드러눕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당은 전혀 동요됨도 어색함도 없이 미사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감동스러운 미사가 끝나기 직전의 사진입니다.
보라색 상의를 입은 분은 미사 때 율동을 이끌어가는 도우미 신자입니다.
흥겨운 성가와 율동이 시작되자 장애우들은 일제히 흥이 나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순간 한 편의 독립영화 감독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흥은 신기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하고 우아했습니다.
도우미의 손을 붙들고 즐거워 하는 이, 혼자 신이 나서 껑충껑충 춤을 추는 이, 조금 전 봉헌 때 유일하게 봉투에 헌금을 넣어 준비해온 양복 입고 키 작은 이는 연신 개다리춤을,,, 그밖에도 다들 너무나 흥겨워 하며 미사는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한 장애우가 흥분한 나머지 미사를 집전하는 단상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단상 뒤에 멀찌기 않아계시는 신부님께로 다가가 붙들려하며 춤을 춥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실방실 웃음으로 답하시는 신부님...
저는 순간 극장에서 어떤 종류의 영화를 한편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떤 종류란,,, 종교 드라마같기도 하고,,,휴먼 드라마 같기도 하고,,, 심지어 싸이코 드라마 같기도 하면서 어느쪽 한쪽으로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훌륭한 것은 모두였습니다.
신부님, 장애우들, 일반 신도, 수사님들,,,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노래부르는 봉사자들 모두...
난생처음 성당에서 봉헌까지한 저는 성체 까지 얻어 먹기 위해 장애우들 틈에 끼어 줄을 섰습니다.
그렇지만 성체를 먹고 난 후의 불상사?를 예견한 아내의 친구분이 저를 말려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체를 먹고 성당에 나가지 않고 시치미를 때면 정말 성체 모독을 한 꼴이 되었을터인데...^^
아무튼 그렇게 해서 아내와 형석이는 길고 긴 냉담을 풀고 고백성사를 앞두고 있으며 저는 훌륭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뜻이 있어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그들의 훌륭한 신앙을 바라보는는 계기가 된 하루였습니다.
2층 침대와 화장실 그리고 간편한 책상만 하나 있는 방에 녀석을 두고 떠나왔습니다.
헤어지는 순간 참으려고 했는데 숨이 컥컥 거리는 모습을 녀석에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먼저 선수를 친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녀도 함께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자식이 뭔지...?
짜샤, 이젠 훨훨 날아가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