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기행

실크로드 기행 2 (쿠처-민펑)

철우박 2007. 8. 17. 12:23

 

00:50 트루판 출발~13:40 쿠처 도착 예정입니다.

 

트루판역에서 야간 열차를 이용할때는

몇 가지 상식이 있어야합니다.

기차에 오르기 전, 또는 오른 즉시 세수를 해야합니다.

출발하고 몇시간이 지나면 열차의 물이 고갈되기 때문입니다.

차내식은 맛이 없어 먹질 못합니다. 뜨거운 물이 준비되었으니 컵라면도 필수입니다.

 그리고 손목시계가 없어 매우 불편하군요.

시차가 있는 해외 여행때는 반드시 손목시계를 차야겠군요.

 

올해 4월 이 지역에서는 사막광풍에 기차가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트루판을 떠나 30분 쯤 가면 '노풍구'라는 곳이 있는데 '늘 바람이 부는 어귀'라는 뜻입니다.

천산의 만년설에서 발생한 강한 서북풍이 지나는 길목입니다.

 

 

열차 안에는 에어컨 시설이 잘 돼있습니다.

기온 차로 인해 물병이 완전 쪼그라들었습니다.

 

 

 

 4인 1실의 객차인데 전 운이 좋게도 현지인과 한 방을 쓰게되었습니다.

위구르족 노인인데 어린 손자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인 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공손했습니다.

잠자는 아기의 모습을 스케치하여 선물로 주었더니

무척 좋아하시더군요.

 

 

열차는 12시간을 달려 쿠처에 거의 다달았습니다.

흙벽돌로 지은 현지 농가입니다.

이곳에선 큰 건물을 지을 때만 구운 벽돌을 사용합니다.

 

 

러시아 여행 때보다 훨씬 깨끗한 시설의 열차였습니다.

 

 

쿠처역입니다.

신장 지역의 모든 시설물에는 한문과 위구르문자가 함께 사용됩니다.

그렇지만 이는 정부에서 지시한 의무사항일 뿐 위구르족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사용하지않고

위구르족언어를 사용합니다.

 

 쿠처는 과거 당나라 때 서역도호부 36개 중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큰 나라였으며

신라 혜초스님은 인도에서 돌아오는길에 이곳을 경유하게되었는데

'왕오천축국전'중에서 유일하게 행적의 시간을 밝힌 곳이기도합니다.

 

 혜초의 말씀입니다.

 다시 소륵(카슈가르)에서 동쪽으로 한달을 가면 '구자국'(쿠처)에이른다. 이곳이 바로 안서대도호부로서 중국 군사의 대규모 집결처이다. 이 구자국에는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소승법이 행해지고 있다.

 

고구려 유민 장군 '고선지'의 쿠처와의 인연은 혜초보다도 더욱 끈끈합니다.

그가 3만 안서군의 주둔지인 쿠처에서 그의 부친 '고서계'를 따라 유년시절을 보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약관 20세에 유격장군으로 발탁되었으며 절도사로 승격해 다섯차례나 대군을 이끌고 세계 전쟁사에서 보기드문 서역원정을 단행한다. 그런데 그 출발지와 개선지가 패전의 고배를 마신 마지막 탈라스 전쟁을 빼고서는 모두 이곳 쿠처이다.    -실크로드 문명기행-정수일 저-

 

 

 

쿠처 역전의 풍경. 

쿠처는 면적 1.5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45만에 84%가 위구르족입니다.

농업과 유전이 주이고 유채와 함께 건조한 기후 관계로 중국 최고의 목화산지입니다.

 

 

교차로 신호등에 시간 표시가 있는게 눈길을 끕니다.

 최근 중국은 자동차 값은 내리고 유류값은 올리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도로 건설 속도를 함께 생각하면 중국도 곧 마이카시대가 도래할것입니다.

 

 

우리가 묵을 쿠처 호텔입니다.

 

 

신장 지역의 평균 밥상입니다.^^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때문에 대부분 양고기와 닭고기입니다.

한국인들을 위해 향료는 사용하지 않도록 사전 주문합니다.

처음엔 적응하려고 애썼지만 며칠이 지나도 똑같은 음식이다보니 조금 힘들었습니다.^^

음식들 사이로 우리가 준비해간 김치,고추장,깻잎 등이 보입니다.

 

함께 여행했던 여류 화가 한 분께서는 은박으로 잘 포장된 김치를 냉동실에서

얼린 후 조그만 아이스 박스에 냉매와 함께 준비해오셨습니다.

 

시원한 김치맛을 보여준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점심을 먹고 곧바로 키질천불동을 답사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사막에 조성된 유전입니다.

이곳 신장 지역은 상당한 양의 원유를 매장하고 있어 중국의 미래를 밝혀주고있습니다.

 쿠웨이트 매장량의 2분의 1에 달하며, 중국 전체의 4분의 1이 신장에 뭍혀있습니다.

이곳으로부터 상해까지 도로 옆 8m 지하의 송유관을 통해 수송됩니다.

 

 

공동묘지입니다. 이른바 '토장'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우리나라 봉분처럼 모래를 쌓아올리고,부잣집들은 작은 집을 지어 그 아래에 매장합니다.

특별한것은, 이곳의 시신들은 썩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수분이 없기 때문에 자연미이라가 되고맙니다.

 

 

키질천불동을 가는 길목에 '아단지모(雅丹地貌)'라고 불리는 이상지형지대입니다.

이곳은 본디 호수지대였습니다. 호수가 융기되고 풍화되면서 괴이한 형상의 지형으로 바뀌었다합니다.

 

 

'염수골'이라고 불리는 지형입니다.

 

 

 

염수골은 바닷물 호수가 말라서 형성된 골짜기입니다.

하얗게 응고된 것이 소금입니다.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손가락으로 찍어 물맛을 보고있습니다.

이곳 쿠처와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는 과거에 바다였다는 증거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아단지모'의 형세들입니다. 한자로는 아담할 '雅' 붉을 '丹' 땅'地' 모양 '貌'입니다. 

'아단'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음차된것입니다.

 

 

쿠처에서 2시간을 달려 '키질천불동'에 도착했습니다.

쿠처에는 10여개의 석굴이 널려있어 신장 전체 석굴의 5분의 3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키질석굴은 둔황석굴, 룽먼석굴, 윈강석굴과 함께 중국 4대 석굴중 하나이며

그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입니다.

 

 

 

'구마라습'의 청동 좌상입니다.

스님은 쿠처에서 태어나 불교의 불씨를 장안에 가서 경론 74부 300여 권을 번역해

동아시아 불교 삼종론의 조사가 된 명승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석굴만도 236개가 되며 3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합니다.

 

석굴내부는 7개만 공개하고 있으며 사진 촬영을 절대 금한답니다.

저같은 환쟁이는 이럴 때 오히려 신이납니다.

손 사진기(?)를 들고 유유히 들어갔습니다.^^

 

 

 석굴 내부입니다. 별것이 없는 석굴 내부를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도 러시아나 독일 일본 등지에서 온 도굴꾼들에게 입은 상처뿐이었습니다.

 

 

 

본디 불상이 박혀있던 자리인데 도굴 당하고 빈 공간만 애처롭게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승려들의 휴식 공간입니다. 왼쪽으로 창이 있고 가운데가 벽난로입니다.

 

 

8번 석굴속에 군데 군데 남은 벽화들을 모아 스케치해봤습니다.

 

 

비교적 원본이 잘 보존된 17호 석굴의 탱화입니다. 동양미와 서양미가 잘 접목된 선이 나타납니다.

 

 

구입한 도록에서 벽화 한 점을 스캔하여 소개합니다.

38번 동굴의 천장 벽화입니다. 원숭이 무리들을 구하고 있는 임금 원숭이에 관한 내용입니다.

서유기가 떠오르는 벽화입니다.^^

 

 

10호굴 안쪽엔 빛바랜 동양인 사진 한장이 놓여있습니다. 연변 출신의 조선족 화가 한락연의 자화상입니다.

프랑스 유학 후, 한 때 그림을 접고 항일구국투쟁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른 후 다시 중국 석굴을 찾아 다니며 복원 운동에 앞장 섰던 분입니다. '키질 벽화와 둔황 벽화와의 관계'라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1947년 비행기 사고로 숨졌습니다. 중국의 피카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독립운동가 포상을 받았습니다.

이곳 쿠처는 우리나라와 끈끈한 관계를 가진 곳이 분명한것 같습니다.

 

 

 

 

'홍유'라는 나무입니다.

사막의 대표적 식물 중 하나인데

우리말로는 홍버들이라 부릅니다.

붉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뿌리가 5m가 넘도록 워낙 깊이 파고들기 때문에

이 나무가 서식하는 곳을 파 들어가면 물을 구할 수가 있답니다.

 

 

다시 쿠처로 돌아가는 길에 화력발전소가 눈에 띕니다.

신장에는 엄청난 석탄이 매장되어있기도합니다. 온 종일 석탄을 실은 차들이 발전소로 들어갑니다.

 

 

위구르족 어린아이입니다.

뒤에 보이는 나무가 미루나무 종류인데 이곳의 대표적인 가로수입니다.

미루나무(혹은 백양나무) 가로수는 한줄이 아닙니다. 어떤 곳은 5줄이 넘도록 겹겹히 조성되어 장관을 이룹니다.

 

 

쿠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랑'이라고 부르는 빵입니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입니다.

 

 

저는 여행을 떠나기 전 구글 위성을 통해 그 지역을 답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구글 위성을 통해 이 지역을 보았을 땐 산맥과 사막지대가 워낙 황폐해보였기 때문에

좋은 잠자리는 아예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나 호텔은 깨끗했고 몽골의 게르에 비하면 너무나 황송하고 고마울뿐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에어컨을 비롯한 모든게 다 있지만

냉장고만큼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드디어.........

죽음의 바다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민펑으로 향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 중의 하나로서 면적은 약 40만 평방 킬로미터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점 4개는 자동차유리가 깨진 것을 때운 흔적입니다.

 트럭이 많은 이곳 도로 상황에서는 유리값을 당하지 못한답니다.^^

 

 

'탑리목사막공로'

타클라마칸 사막 공로의 출발선입니다.

쿠처에서 민펑까지는 750Km, 세계에서 가장 긴 이 312번 사막공로는 522Km입니다.

 

속도제한은 시속 80킬로...예상 소요시간은 12시간

중간에 휴게실은 물론 여자용 화장실도 없습니다.^^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끔찍한 회오리 돌풍 '카리부란'에 휩쓸리거나

붉은 개미때의 습격을 받고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한여름 대낮 기온은 70도를 웃돌고 평균 강우량은 연간 16mm에 불과합니다.

644년 현장스님이 인도에 다녀오는 길에 '대당서역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합니다.

"행인들이 지나간 후에 발자국이 남지 않으니 왕왕 길을 잃고 죽게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죽은자가 남긴 해골을 모아 길 표지로 삼는다."

 

그래서 위구르인들은 '돌아올수 없다'는 뜻의 '타클라마칸'이라 명명한 것입니다.

 

으~~~~~쩔린다. 쩔려!

 

 

공로의 출발점 바로 앞에서 한 노인이 과일을 팔고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하미과를 사먹었습니다.

  이 양반은 두개 36원에 폭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한개 6원(한국돈 780원)입니다.

 

 

맛이요?

한 입 먹으면 희한하고, 두 입째는 몽롱하고, 세 입째는 그대로 쓰러집니다.

과자처럼 사각사각거리고 당도도 엄청 높고 정말 죽입니다.

여행사 사장께서는 호텔에서 하미과씨를 밤새 씻어 공항을 몰래 통과했습니다.

현대판 문익점이 되신거죠. 시골에 수박 재배하는 친척에게 맡겨 수확하면 저에게도 한 통 주기로 했습니다.

성공한다면 때부자 되시겠죠.^^

 

 

식량도 미리 준비해야죠. '랑'입니다.

 

 

화덕의 안쪽 벽에 밀가루를 붙여 구워냅니다.

담백하고 맛있습니다.

 

 

 

드디어 공로로 들어섰습니다.

여기서 부터가 타클라마칸사막입니다.

 

 

한시간 쯤 지나자 저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실의에 빠지고 맙니다.

이 죽음의 바다를 평지나 버스에서 촬영하는것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서적을 통해 보아왔던 멋진 사막 사진들은 사실 비행기가 있어야 촬영이 가능하다는거죠.

 

 

 

거금을 투자하여 구입한 도록에서 스캔한 사막풍경입니다.

 타클라마칸에 직접 가셔도 이런 풍경은 보지 못합니다.^^

 

 

312번 사막공로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어떻습니까? 상상하신 도로가 맞습니까?

사막 공로의 양쪽에는 눈에 보이다시피 넓이 20~30미터의 수목지대가 522킬로미터 끝까지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의해 도로에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된 이 수목지대는

실로 중국인들의 담대함이었습니다.

 

 

수목지대를 잘 살펴보십시오.

지름 1cm정도의 검정색 고무호스가 수목 밑으로 모두 연결되어있습니다.

 

 

이 고무호스 들은 사진에 보이는 수정방(우물집)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수정방들은 대략 2~5Km 간격으로 끝도같도없이 이어집니다.

이 우물집을 일명 '부부방'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그 이유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당국의 조처에 따라 젊은 신혼부부들은 결혼 한 후 이곳에 와서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동안

이 집을 관리하고 정해진 시간마다 수목에 물을 주어야합니다.

허~참.

말이 턱 막혀 안나오네...죽음의 바다에서의 신혼여행이라...?

그나저나 둘 사이의 정은 징허게 들겄네.ㅠㅠ

 

 

소변을 보기 위해 갓길에 정차했는데

신혼부부가 물주는 장치를 가동했나 봅니다.

고무 호스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수목에 물을 뿌려줍니다.

소변 자국이 절대 아닙니다.^^

  

 

신장 생태연구소에서는 10년간의 연구 끝에 사막에서 방풍림으로 쓸 수 있는 수종 네가지를 찾아냈습니다. 멀리 보이는 제법 큰 나무들이 '호양나무'(서역 버드나무)입니다. 키가 3~4미터나 되는 이 나무들은 살아서 천년, 죽어가는데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서있다고합니다.

중간에 코스모스처럼 보이는 나무가 '홍류'입니다. 키질석굴에서 보았던 나무인데 아직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맨 앞의 작은 나무가 '사사나무' 그리고 야생대추나무인 '사괴조'가 있다고합니다.  

 

2005년 한 해만 해도 이 네가지 나무를 200만 그루나 심었다고합니다.

 

 

 

모래를 직접 밟아봤습니다.

밀가루처럼 매우 곱고 발이 쑥쑥 빠지는 바람에 걷기가 힘들군요.

 황사가 이런 미세한 먼지로 이루어졌기때문에 호흡기 깊숙히 흡입되는가봅니다.

영상 70도도 별것아니군요. 정확한 온도는 모르지만 사막기온은 건조하기 때문에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휴게소가 없다고 했는데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막공로와 다른 도로가 교차되는 지점에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식당 주인은 원래 흑룡강이 고향인데 부인을 따라 이곳에 온 후

음식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고합니다.

지금은 마을 식당이 여러개 생겨났습니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현지식입니다.^^

양고기와 야채로 만든 소스에 조금 덜 익은 면을 비벼서 먹었는데

꿀맛이었습니다.

 

 

가도 가도 똑같은 사막길입니다.

지루함도 달랠 겸 앞 좌석에서 사이드미러에 비친 저를 찍어봤습니다.^^

 

 

이제 민펑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막공로가 끝날 무렵 중국 경찰차의 수행을 받는 고위 관리들이 고속으로

우리 버스를 추월해갔습니다.

"휭~~ "

벌금이 무서워서 시속80킬로를 내내 준수하던 기사와 우리 일행은 멍하니

그놈의 차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주유소에 내려 용변을 보려는데 이곳에서 주유하지 않았으니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는군요.

할 수 없이 주유소 옆에다 갈겼습니다.

인심한번이라곤....퇘!

 

 

드디어 초원지대가 나타났습니다.

어느사이 11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타클라마칸사막 횡단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민펑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유일하게 현지 가이드가 없는 곳입니다.

뭐야? 저건...내참. 사막공로에서 요란하게 우리를 앞질러갔던 고관대작 일행입니다.

같은 지붕에서 자겠군요.

 

유심히 살펴보니 중국 검찰의 고위 간부 가족들이 휴가차 온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냥반들 식사가 끝난 후에야 저녁식사가 준비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쪽팔리는군요...

그들은 식후에 악단을 불러, 온 동네가 울리도록 음주가무를 벌리며 놀아났습니다.

내 참 더러워서..

한국만 같았으면 내 카메라 사냥감인데...말로만 들었던 사회주의국가의 몹쓸 관리를 직접보았습니다.

 

 

민펑은 작은 도시였습니다.

이제 이곳 쯤에서 오아시스로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기 시작하는군요.

실크로드 서역 길은 천산이나 군륜산맥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오아시스도시를 잇는 선 임을 알게되었습니다.

 

 

가이드의 권고를 무시하고 시장 쪽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우와, 물이다! 어른은 안받아주나?

 

 

이곳 소도시들은 나귀차가 소중한 교통수단입니다.

오토바이에 수래를 단 택시와 나귀차가 대부분입니다.

한번 타보고 싶군요...

 

 

야시장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습니다.

암벽 등반입니다. 이런 놀이 시설은 우리나라에서도 힛트 예감입니다.

 

 

놀랍습니다.

커다란 야시장이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음식을 사먹습니다.

뭐가 놀랍냐고요?

양고기와 기름진음식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역시 무슬림들은 알라신 앞에 충실했습니다.

 

언젠가 제 아내가 저에게 귀뜀해준 말이 생각납니다.

 

기독교는 '사랑'

 

불교는 '자비'

 

이슬람은 '인내'

...

 

제발 이런 사람들에게 함부로 다른 종교를 들이대서는 안되겠지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