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 꽃으로부터...

...부터

철우박 2012. 12. 7. 09:52

 

...부터

 

어느 날, 낯선 백사장

표류하던 빈 병 반짝일 때

참돌고래 한 마리 파도에 실려 왔다

잿빛 바위등과 너른 몸부림

부서진 파도 마시며 깊은 울음 토한다

바다가 싫어서 그랬을까

육지가 그리워 그랬을까

물고기도 아닌, 네발짐승도 아닌

제 유래를 탄식했을까

 

인간들이 고래에게 말했다

돌아 가 돌아 가 네 바다로 돌아가

죽어가는 고래의 슬픈 눈엔

무서운 인간만이 비쳐져있었다

나는 슬픈 고래를 보지 않는다

내가 고래가 되어 무서운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고래와 헤어진 후

고래의 눈에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꽃으로 부터…

나무로 부터…

잠자리의 눈으로 부터…

흙으로부터 하늘을 보고

나무로부터 구름을 본다

 

세상은 여태껏 인간들의 한 판

신의 후계자, 만물의 수장인가

늙은 뱀보다도 고상한 척

죽은 동물을 연민하는 척

지겹다 그들의 거짓이 지겹다

그것들로부터 나를 보라

 

나는 흙이다

잔인한 인간이 딛고 있는 한 줌 흙이다

내 몸뚱이 사이로 하늘 보인다

그리고 숲도 보이고 작은 나무들도 보인다.

내가 있는 이곳은 버들강아지들이 가득해

민들레 홀씨도 가득 피었군

아, 하늘 가득히 날아가네

이제 내가 흙이 되었으니

어찌 인간이 부럽겠나

 

낯선 어느 날, 백사장

표류하던 빈 병 반짝일 때

타자가되어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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