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
바이칼 호는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그 이름에서부터 가슴 설레게 한다. 바이칼은 시베리아 원주민인 브리야트 족 말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이다. 그만큼 까마득한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바이칼은 이들에게 넉넉한 어머니의 가슴 같은 곳이었고, 이 곳을 중심으로 이들의 문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바이칼 호는 생태적으로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고(1,630미터), 수심 40미터에 있는 동전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이 깨끗하여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담수량도 어마어마하여 세계 식수의 80%(40년간 세계 인구가 마실 수 있는 양), 세계 민물의 20%가 이 바이칼 호에 담겨 있다. 호수 길이가 자그마치 630킬로미터, 폭은 넓은 곳이 80킬로키터 좁은 곳이 27킬로미터나 된다. 또한 호수와 그 주변에 동식물이 약 2,600여 종 서식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80%는 이 지역에만 볼 수 있는 희귀 종들이다. 특이한 것은 바다에서만 사는 물개가 민물 담수호인 이 곳에 서식하고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바이칼 호가 오염되는 순간이 지구가 파멸된다고 말할 정도로 바이칼 호는 지구 환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이칼 호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와 한 핏줄을 가진 몽골로이드의 젖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들 수 있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의 신단수에 이르기 훨씬 이전의 우리 조상의 발원지인 알타이, 사얀 고원 지대가 바로 이 곳이기 때문이다. 흔히 ‘몽골 반점’이라 불리는 엉덩이의 푸른 점, 불그스레한 얼굴, 작은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몰골로이드는 한국인, 에스키모, 멀리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과 인디오의 원형족으로 이 바이칼 호를 중심으로 뻗어 나갔다. 현재 자치 공화국을 이루고 있는 브리야트 족도 몽골로이드로서 언어와 문화에 있어 우리와 닮은 데가 많다. 이 호수에는 크고 작은 섬이 26개 있는데, 이 가운데 알흔에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바이칼 호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모스크바를 거쳐 시베리아 최대 도시 이르크츠크를 경유해서 가는 길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브리야트 자치 공화국 수도 울란우데를 경유해서 가는 길이 있는데, 항공편을 이용해도 되지만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해 가는 것도 색다른 운치가 있다. 몽고를 경유해서 이르크츠크로 가는 길도 있다. 몽고와는 직항이 개설되어 있다.
7월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바이칼 호로 가기 위해 일행과 함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이르크츠크로 향하는 러시아의 쌍발 소형 여객기에 올랐다. 우리 나라의 소설가 시인들 40여 명이 전세 낸 비행기였다.
냉전 구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변혁의 물결에 몸부림치는 러시아의 피폐한 경제를 이 이르크츠크 공항에서 실감했다. 명색이 국제 공항임에도 그 규모와 시설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여객이라고는 방금 내린 우리 일행이 전부였는데, 공항 출입국 수속을 밟는 데 무려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유는 공항 출입국 관리 직원들이 승객의 짐을 몇 번이나 살벌(?)하게 채크했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가방을 열게 했다. 심지어는 소지한 달러 액수를 아라비아 숫자로 적었더니, 모두 영어 원문으로 다시 기재하라고 했다. 간혹 소액까지 일일이 그것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해외 여행을 여러 차례하면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출입국 절차가 까다로운 중국에서조차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서툴러서 이들에게 뭔가 기분 상하게 한 게 아닌가 오해를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달러를 정확히 셈하고 출국할 때 남은 금액을 오차 없이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라비아 숫자는 수정이 가능하지만, 영어 원문은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남녀 구분 없이 일렬로 줄을 서서 옐로 라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뚱뚱한 러시아 공항 여자 직원이 갑자기 남자들을 몰아 내고 여자들만 줄을 서게 하는 것이었다. ‘레이디 퍼스트’였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들을 보며 조크 섞인 웃음을 연신 던졌다. 사회주의 종주국이었으나 일찍부터 서구 문화를 받아들여 여자들을 먼저 배려하는 생활이 몸에 밴 것을 자랑하는 듯했지만, 필자의 눈에는 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으로 사회주의 통제 체재가 몸에 밴 러시아에서나 가능한 일로 보였다.
공항을 빠져 나와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러시아 특유의 건물들과 조금은 음산한 느낌을 자아내는 분위기에 모두들 침묵한 채 차창 밖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르크츠크. 어디서 많이 들은 듯 낯익은 이름이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황제의 밀사>가 생각난 것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황제의 밀사로 파견된 주인공 미하일이 온갖 고초를 당하며 시베리아 이르크츠크에 도착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마지막 장면은 얼어붙은 앙가라 강 너머에서 불타는 성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이 도시는 러시아에서 정책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다.
바이칼 호는 이르크츠크에서 약 7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하늘을 찌를 듯 빽빽이 들어찬 자작나무 숲을 지나 간다. 여름이라 설경(雪景)을 구경할 수 없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눈이 내려앉은 듯 온통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백자작나무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러시아 문학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는 기분이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한다.
자작나무 숲 곳곳에는 호수를 낀 러시아 인들의 휴양지가 있고, 통나무로 지은 별장들이 마치 동화 속의 마을 처럼 아름답다. 이 곳 숲속에서 통돼지 바베큐에 보드카를 곁들인 운치 있는 식사를 하고, 시베리아 특유의 사우나를 했다. 이 곳의 사우나는 통나무 사우나실에서 자작나무로 몸을 두드리며 몸을 덮인 뒤, 차가운 호수에 들어가 식히는 방식이다. 식사하는 바로 곁에 흑곰 한 마리가 긴 줄에 메인 채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음식을 달라는 몸짓인 줄 알고 고기를 던져 주니 마치 사람처럼 앞발로 잡고 먹는다. 목이 마르면 호수로 가 목을 추긴 후 또 춤을 춘다. 놀라운 것은 이 집에서 기르는 개와 씨름을 하듯 서로 어울려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이 곳에서는 곰도 가축처럼 기르는 것 같았다.
바이칼 호숫가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창밖으로 호수가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에서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날씨가 흐려 시야가 뿌옇게 가렸지만, 바이칼 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어느 때 보아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 온다는 말처럼, 흐리면 흐린 대로 또 운치가 있었다. 마치 베일에 가려진 듯한 드넓은 호수에서 하염없이 이야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문득 춘원 이광수의 장편소설 <유정>이 떠올랐다. 주인공 최석이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함께 하던 남백파의 딸 남정임을 맡아 기르는데, 정임은 자라면서 최석을 사랑하게 된다. 최석이 병으로 입원한 남정임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 간 사이에 그의 일기장을 몰래 본 아내의 오해와 질투로 이 일이 신문에 보도되고, 최석은 비교육자로 낙인 찍혀 여학교 교장직을 그만둔다. 그는 전재산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가는데, 그 곳에서 정임에게 사랑의 고백을 듣고 그녀를 포옹한다. 그러고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최석은 시베리아로 가서 바이칼 호 근처에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마치 연어가 모천(母川)을 찾아와 최후를 맞듯, 최석은 이 바이칼을 찾아온 것일까?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과 죽음, 그리고 눈덮인 시베리아 바이칼 호가 이 소설에서 묘사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는 듯 가슴 속에 아련한 앙금이 일게 한다. 1933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애 소설이었고, 그 무대가 한반도를 떠나 온통 눈으로 뒤덮힌 시베리아였다는 데서 이국적 정취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작품의 묘사로 보면 분명 춘원은 이 바이칼 호를 바라보며 소설의 한 장면을 구상했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내용이 현장감 있게 그려졌다.
바이칼 호 주변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들꽃들이 많이 피어 있다. 그 가운데 노란 야생 양귀비가 눈길을 끌었다. 마치 바이칼을 찾은 이방인에게 정염의 눈길을 주듯 불어오는 바람에 고혹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호수 주변 여기 저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히 옷을 벗어던지고 선텐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띤다. 바이칼은 이렇게 사람을 원초적 본능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시장기가 느껴진다. 어디서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 그 쪽으로 갔다. 호숫가에 마치 우리의 시골 5일장을 연상하는 듯한 난전이 펼쳐져 있고, 바이칼 호수에서 잡은 ‘오물(omul)’이란 물고기를 훈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오물은 바이칼 호에서만 서식하는 물고기로 전체 수확량의 70%를 차지하는 어종이다. 은어처럼 생겼고, 맛은 굴비와 비슷했지만, 이 곳에서 보드카와 함께 맛보는 훈제 오물 요리는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맛이 더 특별났다. 때맞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오는 비를 다 맞으며 여유롭게 시식하고 있어 더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빗속에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호수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바다로 오인할 정도로 파도 치는 물결하며 흡사 바다와 같았다. 이 호수는 겨울에는 혹한으로 두께 1미터 정도로 얼음이 얼고, 육로가 되어 자동차가 지나 다닐 정도라고 한다. 물론 환경이 오염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보존한다고 하니, 부디 천혜의 자연이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바이칼 호의 생태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된다. 이 곳에는 지질학적 변천사와 동식물의 분포를 샘플과 함께 잘 전시되어 있다.
바이칼 호로 오기 위해 지나온 이르크츠크는 ‘동시베리아의 수도’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시베리아 최대의 도시로 하룻밤 꼭 묵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바이칼 호에는 모두 336개 강에서 물이 유입되고, 나가는 것은 유일하게 앙가라 강 하나 뿐이다. 이 앙가라 강이 이르크츠크 시내를 관통하며 이 곳 사람들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이르크츠크라는 지명은 몽골 어로 ‘힘’을 상징한다. 인구 60만의 이 도시는 러시아가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통로로 개척되었으며, 몽골, 중국, 한국, 일본, 알래스카, 동시베리아를 개척하는 교두보로 활용하는 요충지가 되었다. 이 곳을 발판으로 러시아는 아무르 강변 유역과, 베링 해협을 개척했고, 이 곳을 통해 러시아는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 사신을 보냈으며, 이후 몽골과 중국 사이의 무역 요충지로 발전했다. 지금도 동시베리아로 이동하는 무역들은 이 이르쿠츠크의 도매상들에 의해 이루러지고 있다.
원래 이르크츠크 주민은 토착 원주민 외에 대부분 정치범 유배인들로 형성되었다. 지리적으로 모스크바에서 5천 킬로미터,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4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며, 모스크바와의 시차가 무려 5시간이나 된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깊숙이 있는 이 동토의 도시를 경영하는 데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고, 따라서 정치범이들의 유배지로 이용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이 도시가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흔히 ‘데카브리스트 혁명’으로 불리는 12월 혁명(182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정치 개혁과 농노제 폐지를 주장하던 귀족 출신 젊은 장교들의 반란)이 실패하면서 주모자들은 모두 처형당했고, 이에 가담한 100여 명이 이 시베리아 오지 이르크츠크에 유배되었다. 이들의 아내들 역시 귀족 출신이었는데, 러시아 정부는 이들에게 남편과 이혼하면 귀족의 지위를 유지하게 해 주고, 그렇지 않으면 함께 유배시킨다고 협박했다. 당시 시베리아로의 유배는 죽음 그 자체였는데, 이 가운데 토르베츠코이(1790-1860)의 아내 에카테리나 토르베츠카야는 후작의 딸로서 기꺼이 남편을 따라 이르크츠크로 왔다. 1856년에 일반 사면이 될 때까지 이들 데카브리스트들은 이르크츠크에서 살면서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군과 싸웠던 장교들로 이 때 유럽 문화와 러시아의 후진성을 실감하여 새로운 변혁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들에 의해 이르크츠크는 귀족 문화와 유럽의 문물들이 소개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토르베츠코이가 살던 집은 현재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그의 부인의 묘는 즈나멘스키 사원에 있다. 죽음을 넘어선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역사 속에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이르크츠크는 앙가라 강과 더불어 아련한 낭만을 제공하고 있다.
밤 11시에 해가 지고, 아침 5시에 태양이 떠오르는 백야(白夜)로 앙가라 강변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밤깊은 줄 모르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대부분 손에 보트카 아니면, 맥주 병을 들고 있어 술을 엄청 좋아하는 러시아 인들의 모습을 원색 그대로 볼 수가 있다. 이 앙가라 강변에는 1891년에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개통되어 1898년 8월 최초의 열차가 이르크츠크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앙가라 강을 굽어보는 소공원 한가운데 있는 이 오벨리스크에는 시베리아 철도 건설의 영웅 엘 마크, 스페란스키,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철도가 건설됨으로써 이르크츠크는 동시베리아 개척의 전초 기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 밖에 이르크츠크에는 미술관과 드라마 극장, 수많은 사원 등 볼거리가 많고, 특히 앙가라 강변에서 백야를 즐기며 하룻밤을 보내는 정취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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