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처럼
김경옥
기러기 아빠가 죽었다
죽음은 보름 만에 빈방에서 발견되었다
그렇게 죽고 싶다
창틈 새 테이프를 바르고 커튼을 내리고
출입문 위에 한벌 더 벽지를 발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몸을 간질였던 피톨들은
잘린 동맥으로 조용히 빠져나간다
냉동실이 쏟아내는 하얀 냉기를 맞으며
몸은 뼛속까지 마른다
욕망을 감쌌던 거죽 부대는 터무니없이 쪼그라지고
나는 습기 한 점 없는 미라가 된다
끈질긴 이명처럼
나를 호출하던 통화음들이여 안녕,
전화를 해약하고
욕망과 소비를 선동하던 시뮬라크들이여, 그만
구독사절을 써 붙이고
전기요금과 각종 공과금은
자동으로 납부될 것이니
냄새가 나가지 않으면 내 죽음을 탓할 이는 없다
서늘한 죽음을 깔고 자는 위층 여자와
푸석한 죽음을 덮고 자는 아래층 아이들이
나의 부재를 눈치채기에는 너무 바쁘다
미라가 되어 함몰된 눈 아래로
습기 빠진 입술은 말려들어가고
허연 이빨만이 남아 비루먹은 생애를 증명한다
처음으로 문을 따고 들어오는 누군가에게
덜 닫힌 내 입을 스치는 바람이
무슨 소리를 낼 것이다
친애하는 후배 김경옥이 첫번 째 시집을 냈다(문학들 출판사)
출판기념행사를 해남 향교에서 했는데
시집을 한 권 얻어 돌아와서 읽었다
시가 참 좋다
시가 볼 만 하다
요즘 눈에 차는 시를 찾기가 어려운데
그의 시는 제격이다
더도 없이 덜도 없이
딱 세상만큼만 도려내어 활자로 옮겼다
물론 그의 말처럼 육즙도 함께...
이제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야겠다
김경옥은 나의 광주기계공고 후배이자
함께 전교조 하다 해직된 동지이기도 하다
그는 교직에서 두번이나 해직되고 복직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방면에서는 나보다 선배다
또한 김경옥의 아내는 내 처와 절친한 대학 동창이다
또또한 비싼 값을 치르고 내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니 친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남에서 태어났고
전남대 국사교육과를 나온 국사선생님인데
광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를 공부한 열렬만학도이다
2003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빌딩 숲에서 길을 잃다'가 당선되었고
2004년 '불임꽃'외 5편으로 '시와 사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지금은 땅끝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치마 속을 올려다 보다
가지런한 치맛자락 속이
하, 보인다
단을 더 댄 끝자락에
잡힌 눈을 뗄 수 없다
주름치마 가는 선들 따라 올라가니
출렁이는 속살에 몸 절로 기운다
바람이 불어
끝이 조금 말려 올라가
치마는 설렁거리고
올려보는 내 눈엔 오색무지개가 뜬다
무채색 치마의 한 겹 속내는
모드가 바뀌어 은밀한 무드
어지러워라,
뭉게구름은 히죽대고
절집 토방에 퍼질러 앉은 봄
고운 단청치마 아래로
바람이 지난다
종종 걸음을 치던 노랑눈썹멧새 한 마리
푸릇! 날아오른다
시평
기러기 아빠처럼 :
죽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었구나
덜 닫힌 내 입을 스치는 바람이 무슨 소리를 냈을까?
기러기 아빠가 무언가 세상에 대고 할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서늘한 죽음을 깔고 자는 여자
푸석한 죽음을 덮고 자는 아이들...
아파트에 살아보지 않으면 도저히...
그는 세심한 관찰력 못지 않게 3D적 관념의 소유자.ㅋ
치마 속을 올려다 보다 :
불가(佛家)에서 감히 단청마루를 보면서 그 짓을 상상하다니
어지럽고 통쾌하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