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겨레 21, 제681호(2007.10.23)에서 퍼 온 글입니다.
경남 밀양에 있는 밀성고등학교 이계삼 선생님의 기고문을 드문드문 발췌한 글입니다.
사진은 밀성고교와 비슷한 처지인, 제가 몸담고 있는 나주고등학교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나는 경남 밀양에 있는 한 인문계고등학교 국어 교사다.
우리 반, 스물네 명 중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도 있지만
틈만 나면 컴퓨터 게임을 하려는 아이도 있고, 가끔은 밖에서 사고를 치는 아이도 있다.
----중략----
나는 이녀석들과 한 몸처럼 부데끼며 살고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의 삶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저들과 내가 우정으로 교류하고 있다고 느낄 때 선생 노릇하는 기쁨을 느낀다.
이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농사를 짓거나 작은 가게를 하면서 말 그대로 '그럭저럭' 사시는데,
20여만원이 넘는 수학여행비나 1년에 네번 등록금을 낼 때면 힘겨운 기색이 역력해 뵌다.
더 이상 나빠질것도 없지만, 한국의 학교 교육이 이나마 지탱되는 건,
아이들이 이 고통스런 멍에를 지고 살면서도 그 나이대의 고유한 선함과 싱그러움
그리고 스무살 이후에 만날 세상에 대한 동경만큼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왜냐하면, 나도 20년 전에는 저 자리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이었는데
그때보다 지금 저 아이들의 삶의 조건이 훨씬 더 가혹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공부를 해도 결국 저 아이들의 대부분은 '88만원 세대'의 전사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당선이 가장 유력해 보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지난 10월 9일 교육정책비전이라는
교육 공약을 내놓았다.
지금껏 나는 쏟아지는 예의 그 '말폭탄'에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애써 그를 외면해왔지만
교육정책만큼은 주의깊게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그의 기자회견문을 내려받아서 두번을 읽고 마음이 먹먹해서 세번을 읽었다.
그가 만약 당선이 된다면 내가 이 소도시의 작은 학교에서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평화도 사라질 게 분명해 보였다.
지금껏 우리 공교육은 쉼 없이 팔이 비틀리고 다리가 분질러져왔지만,
이제는 아예 숨통이 끊어질 차례가 된 것 같다.
이명박 후보가 발표한 교육정책비전을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 교육을 3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라고 비판을 한다.
이것도 어폐가 있다. 그건 30년 전보다는 지금이 그나마 낫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아이들의 삶은 지속적으로 고통스러워졌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학습노동량과 빼앗긴 자유의 크기는
30년 전보다 끔찍하리만치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처지에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비전이 현실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평균 이상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문제일 터이다. 모르긴 해도 교육 현장은 전쟁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프로젝트 4번 '영어교육'과 관련한 부분을 읽어가다는 쓴 웃음이 나왔다.
그는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텐데, 굳이 한글날인 10원 9일에
한국의 학교들을 모조리 영어학원으로 바꿔놓겠다는 발표를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날이 한글날임을 잊었음이 분명하고 달리 말하면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교사 3천 대군을 양성해서 이제는 수업도 영어로 시켜보겠다는데
대단히 안타깝지만, 이 공약 때문에 영어 조기 유학을 포기할 부모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이명박 후보는 전체 고등학교의 20%에 가까운 300개 고등학교를 기숙형 공립고, 자율형 사립고, 마이스터 고교 따위로
재편하겠다 한다. '20대 80' 이론에 맞추려고 숫자까지 계산을 한 모양이다. 특목고와 자립고가 경쟁이 치열하니
왕창 짓고 보자는 발상이다. '초6병' 에다 '중3병'이 새로 생길 것이고, 아이들은 이제 12년 내내 입시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이 미친 시험의 열풍에 맞서 어린 아이들까지 죽음으로 저항할 것이 두렵다.
한나라당 세력들이 '일어버린 10년' 이라고 부르는 시간 동안, 현 정권은 상위권 대학들의 눈물겨운 '부잣집 학생 데려가기 프로젝트'에
'3불 정책' 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어깃장을 놓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화끈하게 풀어줄 테니 알아서 데려가라 한다.
우리 지역 아이들 일부가 그나마 '인 서울(In seoul) 해서 '지하철 2호선'을 탈 수 있었던 것은 내신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내신이 그나마 어느정도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강남, 특목고 아이들과 그럭저럭 경쟁이 된 것이다.
대학입시를 대학에 자율적으로 맡기면 상위권 대학에서 내신이 홀대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략-----
이유는 단 하나. 촌놈들, 가난한 집 애들도 좋은 등급 받는것이니 그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이명박 후보는 그런 거추장 스러운 속곳마저 벗어 던지겠다는 것이다.
----중략-----
대통령선거를 두 달 남짓 앞둔 지금, 이명박 후보가 한껏 만끽하는 대세론이란
'아닌것 같기도 한데 다른 수가 안 보이니 왠만하면 될 것 같기도 한' 이른바 '같기도' 대세론이다.
대한민국에서 사장 노릇하기 쉬운 직종이 어디 있을까만, 체력과 카리스마, 무데뽀 정신까지 두루 겸비해야 하는
건설 사장님은 '사장님 중의 사장님'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건설 사장님계의 선동렬쯤 되는 이가 이명박 후보니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서울시장실에서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제 아들을 히딩크 감독과 기념 촬영을 시켜주었던 '자상한 학부형'이기도 하다.
----중략----
이명박 후보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우리 교육 현장에는 강남과 특목고와 거기에 갈만한 아이들과 그들의 학부모들만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강남 아이들이건, 특목고 아이들이건, 조기유학 떠나는 아이들이건,
그들은 세계화 시대의 전사로 살아갈 '인적자원'이기 이전에 우선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끝으로 이명박 후보에게, 그저 이나라 어느 고등학교건 직접 찾아가서 피곤에 절어 책상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단 몇분만이라도 곁에 서서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
'I HATE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기권 (0) | 2007.12.20 |
---|---|
오만 방자한 광주시장 (0) | 2007.12.17 |
[스크랩] 이명박님 나라 말아먹을 교육정책 감사합니다 (0) | 2007.10.10 |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가 아니다. (0) | 2007.09.30 |
더러운 한국의 과자 (0) | 2007.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