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상처

철우박 2010. 12. 1. 13:13

 

 

전시회를 마치고 블로그를 좀 쉬었습니다.

그리고 며칠만에 '상처'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씁니다.

혹자는 전시회가 잘못되어 제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가? 의아해 하시겠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평도 있었고 작품도 제법 팔았습니다.

제 그림을 보고 사랑해주시고, 비평해주시고, 또 소장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합장을 올립니다.

 

전시회 마지막 날 오전에 전남대 신경호 교수께서 오셨습니다. 마지막 방문객이셨지요.

대학 1학년때부터 대학원까지 저를 지도해주신 분이지요.

안 오셨으면 제가 많이 서운했을 터인데 늦게나마 격려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림들을 벽에서 떼어내서 포장을 하면서, 큰 숙제를 덜어낸 안도감과 함께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한쪽 구석에는 애써 지워버리려고 해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전시회를 찾아주지 못한 몇몇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었습니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었지만 소인배라는 꾸짖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 글로 인해 제가 소인배가 되더라도 부디 그들이 대인배가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네번 째 개인전을 연 것이 5년 전이니까, 5년 만에 또 다시 그 만큼 세상이 변하고 인정도 변했음을 느꼈습니다.

저도 보통 사람들처럼 몇몇 모임의 일원으로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서 여행도 하고 저녁도 나누면서 살아왔습니다.

특히 사다리모임은 제 인생과도 같은 모임입니다.

대학 3학년 때 모임을 결성해서 지금까지 34년여 세월을 만나온 그야말로 죽마고우들입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 때, 13명의 회원 중 6명의 회원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멀리 인천에서 교직에 있는 친구는 전화로 사정 애기를 해서 이해가 됩니다만

이곳 광주에 사는 나머지 다섯명은 전화 한 통도 없이 일주일 내내 전시장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밥 먹는 모임에는 나와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사실은 전시장에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고마운 분들이 더욱 많습니다.

20년 전 제가 초임 시절에 근무했던 낭주중학교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은 한 분도 빠짐 없이 찾아주셨고

율어중학교 때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도 모두 찾아주셨고

대학 1학년 때, 담임교수를 해주시고 결혼 주례를 서 주신 유우선 교수님.

광주 민주시민단체의 대부이자 작가이신 이명한 선생님.

제 아내의 여고 동창생들과 그 남편되시는 분들.

민미협 회원들과 특히 서울에서 먼 걸음 해주신 박흥순 전국 민미협 회장님.

또한 서울과 포항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준 제자들.

수검검도관 검우들.

생각지도 않게 찾아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광주시 교육감 당선자 장휘국 선생님도 취임 직전 몹시 바쁨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셨습니다.

물론 제가 바라듯이 화분도 촌지도 없이 오셔서 떡만 드시고 가셨습니다.

수북중학교 때의 한 제자는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와 막걸리도 함께 마셨습니다.

옛날에 썼던 검정색 뿔테 안경을 왜 바꿨냐고 항의를 하더니 녀석이 먼저 고꾸라지더군요. ^^

 

저는 욕심이 참 많은가 봅니다.

이렇게 소중하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어 저를 격려해주었는데도 상처 타령을 늘어놓겠다니...

 

세상을 살다보면 꼭 해야 할일이 있듯이 꼭 가야할 곳도 있습니다.

저 처럼 나잇살이 좀 들면 부고와 청첩장이 끊이질 않습니다.

어떤 때는 매 주말을 애경사일에 헌납해야하는 이나라의 잘못된 풍습이 한심스럽기 까지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본가와 처가의 부고를 모두 보내는 풍습이 생겼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의 네 분 어른과 심지어 증조부모까지 조문을 해야하는 일은, 발이 좀 넓은 사람에겐 벅차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같은 우리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의견도 만만치 않으니 제 생각은 잠시 접어 두렵니다.

 

남의 탓을 하기에 앞서 저 또한 남에게 상처를 준 일도 많습니다.

먼저 아내에 관한 얘기입니다. 아내는 제가 블로그에서 '바깥양반'이란 호칭을 쓰는 것도 상처랍니다.

하여간 그 양반은 작은 말에도 상처를 잘 받는 편입니다.

어느날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혈액형 B형이 상처를 잘 받는 형이라기에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의도는 상처를 필요 이상 잘 받는 스타일이니 평소에 오해하지말고 상처 받기를 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되돌아온 말은  본전도 찾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 그러니 B형인 나에겐 조금의 상처도 주지 마세요" 였습니다.

역시 인간은 언제나 굳건하게 자기 편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젠간 우리 민미협 회원이 다른 작가들과 3인전을 열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오프닝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차일 피일 미루다가 망각하고 끝내 가지 못했습니다.

전시회가 끝나고 그 친구를 만났는데 말은 안하지만 서운함이 너무나 역력해보였습니다.

그 일 이후로 크게 반성을 했고, 탁상 달력에 할 일을 메모하고, 휴대폰에도 알람을 설정하고,

꼭 가 보아야 할 전시회는 반드시 찾아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 밖에도 학교에서는 제자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부모님들에게, 형제들에게, 친구들에게, 혹은 자식들에게도

상처를 준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상처'의 기준은 제가 아니고 받아들이는 남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 믿는 사람에게서 크게 받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직장에서 매우 절친한 선생님이 무심코 한 말에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10여분 후에 저의 고질병인 협심증세가 발병해서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자식 때문에 심장이 멎어 죽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남 애기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슴의 상처는 이렇게 사람을 마구 힘들게 합니다.  

 

세상살이의 섬세함이 부족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배우고, 커가고, 나이들어가면서 '역지사지'를 반드시 배워햐 한다고 믿습니다. 

남의 입장이 되어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그렇게 되거나, 그렇게 비슷하게라도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버리고 희생과 봉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한번 씩 두번 씩  생각하면서 인생을 살면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반드시 가보아야할 곳은 자신이 알 수 있습니다.

반드시 축하하고 위로해줘야 할 사람은 자신만이 압니다.

사람에게는 서로 만나보고 위로해주는 즐거움이 있으며 이것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 모두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거나 돈이 되거나 출세가 되거나 하는 일엔 죽도록 매진합니다.

그러나 친구일수록, 가족일수록, 혹은 부모자식일수록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마음을 잃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전시회에 찾아오지 않은 사다리 회원 친구들에게 제 마음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 두 명이라면 서운함으로 남겠지요. 그러나 한 두 명이 많아져 여러 명이 되면 상처로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글을 썼으니 그 친구들을 원망하지는 않겠습니다.

요즘 세상을 원망하고 또 제 부덕을 스스로 원망해야겠지요.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다보니 공자 말씀 중 이런 귀절이 있더군요

 

子貢問曰, "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子曰, "己恕乎인저 己所不欲을 勿施於人하라"

자왈             기서호인저              기소불욕을                 물시어인하라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죽을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용서이다. 자기가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것이다."

 

 

맞는 것 같습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일은 용서일 뿐입니다.

용서란 사랑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친구들아 미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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