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섬진강...

진상고개에서...

철우박 2006. 5. 25. 11:08

 

  

 

                                         진상고개에서...,72.7*53Cm, Acrylic, 2004 (김선애 소장)

 

진상고개에서...

 

 

진상 마을 고갯마루를 숨차게 오르면

 

발 아래로 하늘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곱사등 노구가 무거운 허리를 세울 필요도 없이

 

하늘은 저절로 그림자 되어 강줄기에 제 몸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하동 솔밭 솔보득이 그림자와 함께...

 

 

갈바람이 불면

 

비늘구름과  함께 하던 새들도 나무도 하얀 하늘도

 

참빗 결같은 빗살켜 속에 금새 몸을 숨긴다

 

 

긴 세월, 괭이 든 두 손

 

검정 옹이 꽃이도록 살아온 추동마을 김노인처럼

 

오후가  되어 고즈넉이 노을이 지면

 

지친 하루 센 물살에 맡겨버리고

 

섬진강은 늘 그렇게 흘러간다

 

...

삶이 흐르는 그 강
박철우씨의 `강 그리고 빛’전

6년 만이다. 민중미술을 했던 화가 박철우(49)씨가 지난 1998년 마지막 개인전을 가진 후 꼬박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무엇을 그려야 하지?”란 물음이 그토록 긴 침잠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리고 다시 개인전을 열었다. 무등갤러리서 다음달 1일까지 계속되는 박씨의 전시 주제는 `강 그리고 빛’.

“10년 전쯤이다. 강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 당시 5월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고, 미술운동에 뛰어들어 한참 열심히 활동했을 무렵 내가 속해 있는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에서 동학 100주년 기념전을 준비했다. 그 때 동학전투가 있었던 황룡강을 찾았다. 강이 가슴에 담기더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유히 흐르는 강은 모든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듯 했다.”

그 때부터 그는 강을 그리기 시작했다. 강을 찾아 다니진 않았다. 무슨 인연이 있는지 그가 가는 곳마다 강이 있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던 그 땐 황룡강과 드들강이 있었고, 4년 뒤 다시 교단으로 돌아간 광양엔 섬진강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보성 율어중학교 근처엔 보성강이 있다.

“강을 그리는 게 내 팔자인가 보다”고 생각했다는 박씨.

강이란 작가의 삶과 유리된 도피처가 아닌 삶이 일어나는 곳. “삶과 무관한 풍경을 그리지 않는다”는 박씨는 그저 예쁜 풍경이 아닌 삶이 들어있는 풍경을 그린다고 했다.

오랫동안 민중미술로 치열하게 현실과 싸워왔던 탓일까?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적이 사라진 오늘 그는 강을 그리지만, `민중’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광주민중항쟁 이후 `민족미술인협의회’와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창립에 동참했고, 매년 5월이면 망월동과 금남로 거리 등에서 `오월전’을 열고 치열하게 현실에 참여했던 박씨.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며 살았던 그 시절보다 맘이 많이 편안해진 걸까? 그래서 그는 세상 다 포용할 것 같은 기세로 강을 그리는 것일까?

한참 멀리 시선을 둔 그의 그림은 사실 아름답다. “때론 `관조’하는 듯한 그림의 시선을 탐탁치 않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박씨는 허허 웃다가 “그게 편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멀리서 그리는 풍경화의 무기력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박씨는 고민한다.

박씨의 강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그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강에 숨어있는 전어떼인 듯 하기도 하고, 고기잡이 배의 긴 장대인 것 같기도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빛 때문인 듯도 하다. 그가 보기엔 움직이지 않는 풍경은 죽은 풍경이다.

10년간 강을 지켜봤던 그는 변해가는 강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안타까움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쪽빛 강기슭엔 황어 우는 소리 끊이지 않고/ 재첩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을 내민다/ 아낙들은 물질에 여념이 없다/ 이장과 김씨가 싸우는 소리에도/ 아낙들은 물질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그 강은 “중도마을 강가에 긴 뚝 세운 후부터” 달라졌다. “아이들은 새 청바지를 사 입고 학교에 갚지만 “해마다 들리던”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

“광양만엔 이제 늙은 어부가 없다. 섬진강엔 이제 은빛 전어가 없다”는 그의 싯구처럼 `보이는 적’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적’들이 늙은 어부도 은빛 전어도 숨겨 버렸다.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꿈꾼다”는 그도 그 사실을 아는 것이 틀림없다.

황해윤 기자 /광주드림
www.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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