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러시아 기행

러시아를 향한 두근거림...(12일째-1월26일)

철우박 2007. 2. 16. 21:49

 

오늘은 러시아를 향하는 날입니다. 오후 1시 50분 기차입니다.

오전에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몽골의 불교 사원을 방문키로 했습니다.

 

 

몽골 3대 사원 중 하나인 '간단사원'은 우리가 묵고 있는 '하라호름 호텔'에서 무척 가까운곳에 있었습니다. 사원 앞쪽에서 호텔이 바라보입니다.

 

러시아를 향하기 전, 우리 일행의 많은 짐은 또다시 애물단지였습니다. 다행히 호텔에서 우리가 다녀올 동안 짐을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간단사원의 입구입니다.

 

 

 

몽골에서는 한 때 불교가 사라진 때가 있었습니다.

소비에트연방의 사회주의정권은 700개에 달하는 사원을 철거했으며, 칭기스한 역시 역사의 잔인한 폭군으로 격하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이 간단사원만큼은 당시에도 유일하게 라마교의 실낱갇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합니다. 

 

라마교는 티벳불교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라마'란 '덕이 높은 고승'을 일컫습니다.

중국의 침공을 피해 망명한 '달라이 라마'...'달라이'는 '큰 바다'를 뜻합니다.

즉 '달라이 라마'는 '큰 바다와 같이 덕 높은 고승'이란 뜻입니다.

 

현재 달라이 라마는 북인도의 다람살라에서 라마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몽골은 1990년 새 정부 수립과 함께 칭기스한의 복원운동과 라마교의 온전한 전통을 화려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스님과 신자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사원의 단청은 우리나라 사찰로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사찰 내의 불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한국의 불교와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지에 지어진 사원 내부를 정사각형으로 간주할 때 전면에는 부처님과 각종 보살상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정사각형의 안에 또 하나의 정사각형이 있으며 이곳에서 스님들이 불경을 외웁니다.

신자들은 신발을 신은 채 출입하여, 큰 사각형과 작은 사각형 사이의 통로를 이동하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서 부처님과 보살상 바로 밑에 시주(돈)를 한 후, 이마를 대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곳에 비하면 한국의 절은 훨씬 엄숙하고 엄격합니다.  

한국의 절은 일단 높다란 단 위에 지어집니다. 신발을 벗고 그보다도 높은 대웅전 마루에 다다릅니다.

비 신자나 관광객은 감히 이곳에 오르지 못합니다.  부처님 또한 불자로 부터 먼 곳에서 응시합니다.

 

몽골의 라마교는 신자가 아닌 관광객도 신발을 신고서 부처님의 바로 앞에 이를 수 있는 다정함이 있었습니다. 

 

  

 

왼편에 보면 사원 앞에 널판지가 쭉 널려있습니다. 춥지 않을 때는 이곳에 엎드려서 불공을 드리기도한답니다.

  

 

사원 곳곳에는 이와 흡사한 원통들이 무척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불자들이 소원을 비는 도구라고

합니다.

 

 

사원의 뒷 쪽 벽인데 이마를 수없이 대어서 까맣게 되었습니다.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울란바토르역에 도착했습니다.

 

 

 

울란바토르 - 모스크바

말로만 들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부터 모스크바 행이랍니다.

그래도 이 열차는 시베리아 횡단 구간을 한참을 달릴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한국에서도 고속열차를 타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르크추크'역 입니다. 24시간이 소요된답니다.

모스크바까지는 꼬박 나흘이 걸린답니다.

 

 

 

1실에 4명이 정원입니다. 2층 침대칸입니다.

 

 

오른쪽 사람이 몽골 소설가'아요르'입니다. 세미나에서 만났던 친구입니다.

푸렙은 러시아어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 러시아어 통역을 부탁했습니다.

이제 러시아에 도착하면 번거롭지만 2중 통역을 해야합니다.

 

 

아요르는 솔찬한 술꾼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보드카와 안주와 빵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예의 바를수가?

아요르는 러시아 고르끼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울란우데에서 박사학위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영어도 잘합니다. 흠이 있다면, 한국말을 못합니다.^^ 

 

 

점심도 못 먹었는데... 빈 속에 보드카와 빵이라니... 몽골에선 어쩔 수 없습니다.

 

 

자 러시아를 향해 출발해볼까요.

 

 

우리 방에 불청객이 한 분 동승했습니다.

거구의 몽골 아주머니 한 분입니다. 알고보니 중국산 물건을 모스크바로 몰래 가져가 판매를 하는 오파상이었습니다.

객차 곳곳에 이런 양반들이 득실거렷는데...세관 통과를 위해 서로의 물건을 분산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진에 나타난 물건이 수태차를 만들 때 사용하는 질 낮은 중국산 녹차입니다. 이 사람이 이것을 다른 오파상들에게 나누어 주고, 또 나누어 받고, 국경을 통과하면 서로의 물건을 되찾는 수법입니다.

 

 

헐, 이층은 내 자리인데... 남의 사물함에 신문지를 깔고 놓아둔 저것은 과연 무었인고?

아주머니가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 까지의 식량 중 일부분입니다. 

'말고기'입니다. 푸렙이 보더니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습니다. "야~ 정말 맛있는 것인데..."

 

12시간이 지난 후, 가장 큰 덩어리는 결국 우리 차지가 되었습니다.^^

 

 

 

석양과 함께 기차의 머리가 보입니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맨 뒷칸에 탔습니다.

덕분에 맨 뒷칸의 유리를 통해 멋진 작품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사진대전에 출품할 계획입니다.

제목은 '기차는 8시에 떠나고...' ^^

 

 

 

 석양이 지기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몽골의 들판이 흔들린다.

모두가 단 잠을 즐기고 있을 때

.....

 

나는 답답한 등산화를 벗어버리고 맨발로 차창가에 서 있다.

살 찐 오파상들이 내 옆을 지날 때면

내 몸이 오그라들면서

나는 창밖 몽골의 평원으로 행복하게 밀려난다.

 

해가 지기 전에는 몽골...

그리고 내일 해가 뜬 후에는 러시아일 것이다.

 

검은 구름과 낮은 산들은 움직이지 않은 채, 눈 덮힌 평원만이 바람 스치듯 자나갈 뿐이다.

 

그렇게 흔하던 양 때와 말들도 갑자기 사라졌다.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저 쪽 창가에서, 러시아인처럼 생긴 사나이의 눈과 마추친다.

내가 눈 인사를 보내니 그쪽도 반긴다.

...

 

아! 또 다시 나타난다. 몽골에선 지울 수 없는 풍경이었다. 반갑다. 양들아

 

...

 

나는 지금 어처구니 없게도

 내 머리 속에

몽골의 한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호텔에서 10여일을 묵으면서 내가 그녀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틀 전이다.

언제나 매일같이 프론트에서 보아왔지만, 어느날 내가 몽골에 익숙해질 무렵

 그녀가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울란바토르 하라호름호텔의 프론트에서 일하는 여직원이다.

 

성급하게도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몇일 후, 러시아 여행을 마치고 하라호름호텔에 다시 돌아와서도

그녀와는 절대 말하지 않고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유라면, 그녀의 구체화된 영상이 몽골에 대해 아름답고 순수하고 싶은 나의 몽환을

오히려 닦아버릴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운 몽골의 여자였다.

 

둥그런 얼굴 형에 발긋 튀어 나온 광대 뼈. 작은 코와 입,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처의 상에서만 볼 수 있는  날 선 눈매...

 

이전에 몽골을 그린 어떤 영화에서나 보아 왔던 전형적인 몽골의 여자였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길쭉하고 검고 맑은 눈과 여유있는 그녀의 미소였다.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한국에 버젓이 처자를 두고있으며

함께간 여학생들의 질투심(?)에도 불구하고, 나를 그녀 옆에 서성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모습은 내가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유형의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향하여

마치 먼 친척과도 같은 동질감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나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열차의 맨 앞 칸까지 다녀오기로 마음 먹는다.

다른 칸에는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는지...

중간에 식당 칸은 있는지...

도대체 이 열차의 칸 수는 몇이나 되는지...

조금은 남과 다른 호기심이 발동된 것일까?

아니면

자꾸만 머릿속과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애써 지우기 위함일까?

 

어찌됐던, 칸과 칸을 지날 때의 흔들림과 커다란 소음은 나로부터 

잠시만이라도  그녀의 생각을 잊게 해주었다.

 

먼 이국땅 기차에서, 내 칸으로 부터 점점 멀어질수록 작은 두려움도 다가왔다.

칸과 칸을 거듭하면서, 내가 기대했던, 겨울 러시아 여행객 같은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조금은 찌든 모습의 오파상들과 그리고 반팔 차림의 승무원들이었다.

 

마침내 나는 수십칸의 기억을 딛고 마지막 문에 다달았다.

덜컹! 하고 마지막 문을 연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엄청난 굉음과 거친 바람과 함께 무섭도록 시커먼 철판 벽이

 마치 나를 집어 삼킬것 같은 기세로 턱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나는 황급히 문을 닫고 되돌아왔지만,

되돌아 오는 시간은, 찾으러 갔던 시간보다 훨씬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어찌되었든, 나의 작은 호기심 덕분에

결코 당당하지도 잘하지도 못한 그녀에 대한 상념을 애써 떨쳐낼 수 있었다.

 

물론 당분간 이겠지...

 

다음에 내가 또다시 몽골을 간다면, 이 글을 읽은 아내가 과연 나를 다시 보내줄까?

난 오늘 바보같은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푸렙이 작사한 곡 중에도 이런 곡이 있다고 했다.

 

"사랑은 죄가 될 수 없어요."

 

^^

 

2007. 1. 26  러시아행 기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