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월31일. 17일째입니다.
열차는 오전 6시 30분, 울란우데역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기온은 영하 30도.
아요르가 이미 연락을 취해두었기 때문에 현지 작가들이 우리 일행을 마중나왔습니다.
'하닥'이라고 부르는 천입니다. 브리야트인들은 손님을 맞이할 때, 흰색 또는 푸른색으로 된 목도리를 선물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이런 환영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날씨는 춥지만 기분은 따스합니다.^^
울란우데 역사입니다.
울란우데는 부리야트 공화국의 수도입니다. '울란우데'란 '붉은 전사'라는 뜻입니다.
1666년 카자크 기병대의 동계 야영지가 이곳에 세워지면서 러시아 제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면적은 남한의 3.5배, 인구는 100만 정도이며 부리야트족이 24%, 러시안이 76%입니다.
부리야트 공화국은 바이칼 호수의 오른쪽을 감싸고 있습니다.
예로 부터 바이칼호수 주변 생활을 이어왔으며, 한때 몽골과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1991년 10월, 독립공화국을 선포하고, 1994년 '빠다뽀브'대통령을 선출했지만 아직도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있습니다.
종교는 몽골과 같이 대부분 라마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우리 일행의 숙소인 부랴찌야(부리야트)호텔에서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오전 10시 30분, 부리야트 문인협회 사무실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사람이 문인협회 회장이신 '앙갈하이브'씨 입니다.
이곳 문인협회는 부리야트의 유명 신문사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앙갈하이브'회장은 이 신문사의 편집장이기도 합니다.
몽골도 마찬가지이지만 부리야트 또한,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신문사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벼운 상견례 정도로 생각했지만 부리야트 쪽에서는 달랐습니다.
그분들의 태도는 매우 진지하고 친절했으며, 참석자 또한 문학계의 원로들이 대부분 이셨습니다.
앙갈하이브 회장님은 '무지개 나라'에서 온 우리들이 너무 반갑다며 인사말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광주에서 왔습니다. 한국인들은 이곳 바이칼호 주변의 부리야트족이 우리들의 조상임을 지리 역사적으로 인지하고있습니다. 우리 광주의 상처와 부리야트의 상처는 매우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서로의 문화와 예술을 교류하기를 희망합니다. 이곳 예술인들을 다가오는 4월에 광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만남은 한국과 부리야트의 예술인들의 첫번 째 만남으로 기록될것입니다.
부리야트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원로중의 원로작가이십니다.
한국의 박경리선생님을 연상케하는 이분은, 따로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계셨습니다.
상견례가 끝나자 진수성찬이 마련되었습니다.
보드카와 와인, 초콜렛까지... 우리 일행은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부리야트와 광주의 예술 발전을......"위하여!!!"
부리야트와 몽골에선 보드카 건배가 매우 엄숙히 집행됩니다.
한입에 털어넣지 않으면 상대방의 성의를 무시하는 꼴이 되고맙니다.
"무조건 원 샷!"
상견례가 끝나고 곧바로 사찰로 안내되었습니다. 아마도 '다짠사원'인것 같습니다.
사찰 내부의 사진을 보니 이곳에도 달라이라마가 다녀갔군요.
부리야트족의 90%가 라마불교의 신자입니다.
엉성한 듯한 조형물을 보면 넉넉치 못한 절의 살림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들의 불심은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절 처럼 '대학입시를 위한 백일기도' 따위의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심정적으로는 불교를 가까이하는 편인데...한국의 절 마다 적혀있는 위의 문구가 자꾸 저더러 절에 나오지 못하게 하더이다.
어떤 종교이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기도는 샤머니즘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
시내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대접 받았습니다.
저희들이 식사값을 지불하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보츠'라고 하는 부리야트 전통 만두입니다. 이번엔 맥주입니다. 이곳 맥주도 유럽 스타일이기때문에 맛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쌉쌀한 호프향이 나는 유럽 스타일 맥주를 좋아합니다.^^
소비에트 광장입니다. 울란우데의 맨 중심이지요. 뒤쪽으로 레닌의 두상이 보입니다.
가운데 검정색 가죽 베레모를 쓰고 계신 분이 '트모르 에유'씨 이십니다. 이곳에서 유명한 시인이십니다. 부리야트에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일행의 안내를 진두지휘해주신 분입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시던지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동네 아저씨같이 따뜻한 분입니다.
"아저씨, 광주에 꼭 오세요. 저희들도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의 두상입니다.
모스크바에서는 레닌의 동상들이 상당 수 철거되었지만, 이곳의 레닌상은 건재합니다.
얼마나 크냐고요?
겁나게 큽니다.
소비에트 광장의 얼음 장식들입니다. 얼음 안에 전구가 설치되어있어 밤이면 오색 찬란한 빛의 궁전으로 변신합니다.
부리야트 민속 박물관입니다. 공짜입니다. '트모르 에유' 아저씨만 따라 다니면 관람료는 모두 공짜입니다.^^
결과론 이기는 하지만, 이르크추크 '탈쯔이 박물관'에서 박차고 나온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부리아트족의 민속과 역사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유목민 초기의 나무 껍질로 만든 전통 가옥입니다. 점차 가죽으로 만든 형태로 변화를 보입니다.
동물의 습격을 피하기 위한 고층? 가옥들입니다.
샤머니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조형물들입니다.
마치 네 발이 달린 동물의 현태를 연상시킵니다. 역시 샤먼 의식의 도구로 사용된 듯 합니다.
너무나 흥미로운 물체가 우리 시선을 끌었습니다. 부리야트의 솟대입니다.^^
부리야트의 솟대는 한국의 솟대에 비해 무척 사실적이군요.
한국의 솟대는 보통 기러기를 나타내지만...이곳은 황새? 부엉이? 까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동족의식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는데...
호랑이 까지 가세하여 중얼거립니다. " 느그는 한 민족이여..."
어쭈라, 반말?
내참, 이젠 싸리비까지 가세하는군요. " 암은, 그러고 말고...한 핏줄이제..."
한국의 싸리비와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은지요.
첫날부터 강행군입니다. 이곳은 부리야트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입니다.
이곳도 공짜입니다. '트모르 에유' 시인 아저씨는 아예 우리 일행을 VIP실로 안내했습니다.
공연장의 관계자 분은 우리를 반가히 맞아주었고, 한국에 관한 서적들을 꺼내어 보여주었습니다.
김명국의 '달마도'이군요. 겸재의 그림도 있습니다.^^
가운데 루돌프 사슴코를 하신 분이 이 극장의 관장님이십니다.
그의 바로 왼쪽 사람이 희곡 극작가인데, 부리야트에서 보기 힘든 크리스찬이었습니다.
답사 중에 제가 '이곳의 크리스찬은 얼마나 되느냐고'물었는데...이분들은 처음에 저를 크리스찬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이 친구를 크리스찬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공연장으로 안내했습니다.
극장 앞의 주차장엔 차량도 몇대 안되고 극장 안이 조용하게만 느껴졌는데...
넓은 객석이 관객들로 꽉 찬 것을 보고 깜짝 놀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발레공연 '로미오와 쥬리엣'을 발표하는 날입니다.
이곳 부리야트의 발레 수준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곳입니다. 수준 높은 발레 학교에는 한국인 유학생들도 제법 있다고 합니다. 현재 단원 중에도 2명의 한국 발레리나가 있다고 하더군요.
소규모 악단의 음악에 맞춘 발레 공연은, 한국에서도 좀처럼 보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관객을 살펴보았더니, 대부분이 러시아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이 양반은 이곳 극장의 전속 화가입니다. 명암에 'painter'라고 소개되어 있어서, 저도 화가라고 말하자 무척 반가워했으며,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이 분 모습이 정말 화가처럼 보이지 않으십니까? 저는 제 자신이 영화배우처럼 생겨서 싫습니다. ㅠㅠ
한가지 궁금한게 있었는데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하루 울란우데에서 저희들이 가깝게 만난 사람들은 모두 부리야트인입니다.
러시아인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문인협회는 그런다고 치고, 러시아인 관객이 거의 대부분인 이 극장의 운영진도 대부분이 부리야트인들이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가는길에 왜 러시아인들은 자취를 감추었을까요?
아마도 이곳의 부리야트인들은 동족애로 끈끈하게 뭉쳐있는것 같았습니다.
.....
즐거운 하루였습니다만, 호텔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러시아 고행의 망령은 되살아나고야 맙니다.
오메, 이것이 먼 일이당가? 도대체...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서 충격적인 사실에 접하게됩니다.
우리 일행의 여권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차표 발권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예정된 시간에 울란우데를 떠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몽골에서 한국행 비행기 조차도 놓칠 수 있다는것입니다.
눈앞이 갑자기 희놀놀해졌습니다.
말인 즉슨. 러시아에 여행 온 외국인은 비자와 상관 없이 채류 3일이 지나면, 인근 러시아 경찰서를 찾아가서 수수료를 지불하고 여권에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르크추크에서 확인을 받지 않고 이곳 울란우데에 와버렸다는겁니다.
우리일행 : "아니, 머시 그런 법이 다 있다요?"
호텔직원 : "러시안께 그런 법이 있제"
우리일행 : "언제부터 그랬다요?"
호텔직원 : " 2007년 1월 15일 부터 법이 변했다요."
우리일행 : "머시라? 그날 우리는 한국을 떠났는디 우리가 그것을 어찌고 안다요? ...글고 최소한 우리가 러시아 에 입국할 때 고것을 갈쳐줘야 쓰거 아니요? " "안 그러요?"
호텔직원 : "근디, 요 법이 바뀐지 얼마 안돼서 공무원들 조차도 아직 잘 모른다요...
우리일행 : "글믄 우리는 어째야 쓴다요?"
호텔직원 : "우리가 여그 경찰서에서 어찌고 해보기는 하겄는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을 못허요. 아, 글고 거시기 방값은 어제는 첫날인께 디스카운트 해줬는디...오늘 부터는 제대로 내야 쓰요...."
우리일행 : "머시라? 여인숙 같지도 않은 여그 방값이 얼만디...?"
호텔직원 : "2인실 하루밤에 2200루불 주씨요."
우리일행 : "오메, 저 날도적들 보소..." "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에 전화좀합시다."
호텔직원 : "시방은 전화가 안되는디요."
우리일행 : "머시여, 그럼 한국에 국제전화좀 합시다."
호텔직원 : "그것도 낼 아침 우체국에 가야쓴디요."
우리일행 : "아니 여그가 호텔이 참말로 맞으요?"
호텔직원 : "넹"^^
......
우린 그날 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안하고...긴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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